화합의 주춧돌  

 

요한복음을 읽어보면, 마지막 21장은 꼭 부록처럼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20장의 마지막인 31절이 책을 마무리 짓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결론으로 쓴 글입니다. 그러면 21장은 왜 추가되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21장을 읽어보면, 그 내용이 베드로라는 예수님의 제자와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잡히셔서 심문받으시는 동안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제자입니다. 마가복음 1471절에 의하면, 세 번째는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의하면, 그런 베드로가 놀랍게도 교회의 첫 번째 지도자가 되어서 대단한 활약을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사람이 지도자로 나서서 교회를 이끌어 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닭 울음소리를 듣고 울었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체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열 명의 사도들을 제치고 첫 번째 지도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21장은 누군가 제기할 수 있는 그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용서해 주시고, 그의 권위를 회복시켜주셨음을 알려주기 위해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만나시고,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대답을 세 번 들으신 후에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과 베드로가 사용한 단어의 차이는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의미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두 다 세 번씩 반복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용서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제자들은 일곱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 중에 유독 베드로를 택하여 목양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에게 수제자로서의 권위를 회복시키심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용서해주시고, 권위를 회복시켜주심으로 인해, 베드로는 앞장서서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게 되었고, 교회는 그를 지도자로 인정하고 따름으로써, 서로 화합하여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지방선거를 끝낸 후,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시점에 와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처럼 용서해주고, 권위를 회복시켜줌으로써 화합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모두 화합하게 하는 주춧돌로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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