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성장의 발판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면, 자기 방어를 위해 감추어진 중요한 사실을 말하곤 합니다. 바울도 갈라디아교회의 일부 교인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자,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개인적인 일들을 갈라디아서에 고백하였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갈라디아서 117절에 나타나는 아라비아 방문에 관한 고백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 의하면, 바울은 회심체험 후 다메섹에 머무르면서 전도하다가, 유대인들의 살해 위협 때문에, 몰래 도피하여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117절과 18절에 의하면, 바울은 회심체험 후 다메섹에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온 후, 3년 만에 예루살렘에 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자기 방어를 위해 감추어졌던 아라비아 방문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갔다고 고백한 아라비아는 어디일까요? 많은 사람이 아카바만 동쪽 혹은 동남쪽의 광야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 서쪽 광야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1132절과 33절에 보면, 바울이 말하기를 다메섹에서 아레다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쌔,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아라비아를 다메섹 근처에 있는 나바테아 왕국 안의 한 지역으로 생각합니다.

 

아라비아가 정확하게 어느 곳을 지칭하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아라비아라는 곳이 광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라비아라는 말이 사막이나 나무가 없는 넓은 초원 같은 곳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소외, 갈증, , 고통 등이 연속되는 곳입니다. 신명기 119절에 기록된 모세의 말대로 크고 두려운 곳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곳을 자청해서 찾아 갔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서에 나타나는 광야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서에서 광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특별한 사람들의 신앙 정립을 위해 훈련의 장소로 사용하신 곳입니다.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생활이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나서기 전 모세의 40년 미디안광야생활, 그리고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예수님의 40일 광야생활이 그 좋은 예입니다.

 

바울이 예수께서 광야로 가신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구약에 나타난 광야에서의 일은 잘 알고 있었다면, 그도 역시 확실한 신앙 정립을 위해 아라비아로 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바울은 자기에게 일어난 놀라운 사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며, 정리할 필요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과 대화하기에 앞서 하나님과 대화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아라비아에서의 시간이 위대한 전도자 바울을 탄생시켰습니다. 아라비아에서의 시간이 신앙 성장의 발판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여름에 신앙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