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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리회목회자모임 새물결 목회위원회는 2018423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서대문 기독교사회연구원 빌딩 이제홀에서 작은교회와 함께 하는 목회세미나를 부산의 해운대교회 한석문 목사를 강사로 진행하였다. 각 교계 중심 언론사들의 취재가 있었고, 교단뿐만 아니라 교계에서도 새물결의 목회연구에 관하여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강사인 한석문 목사는 크라이튼전례신학에서 말한 성찬과 교회력과 성서일과는 결코 떼어놓으면 안 되는 예배의 삼위일체라 할 수 있고, 교회력에 따라 공전하며 선포된 성서일과는 반드시 성찬을 통해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와의 일치에 도달한다는 입장에서 초기의 아포파틱신학(부정신학)과 중세의 카타파틱신학(긍정신학) 그리고 프로테스타티즘의 경험적 신학의 역사적 흐름 속에 중심이 되었던 교회력과 성서일과를 통한 성만찬의 중요성과 필요성,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 가지의 균형이 필요함을 서론으로 설명하였다.

 

한석문 목사는 우리가 회복회야 할 예배는 성만찬의 회복에 있음에 확신한다고 말했다. 과거 3세기 전까지만 해도 성만찬 그 자체가 바로 예배였기 때문이다. 현대의 다양한 예배의 모습에서 갈 길을 잃은 교회예배가 길을 찾기 위해 돌아가야 할 것이 바로 성만찬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본 강의에서 명시한 세 가지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1. 교회력

교회력의 다른 표현은 예배력(Litugical Calender)이다. 2세기경의 산물인데, 이 교회력의 신학적 의미 혹은 목회 실천적인 의미를 말한다면 교회력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행위들을 인지하고 무엇보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구원의 행위를 기념하는 것이다. 부활절에서 성령강림절기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생태적 발걸음이 바로 교회력이다. 따라서 오늘의 교회들은 이 교회력의 공전을 따라 걷도록 초청받고 있다.

 

2. 성서일과

교회력을 따라 낭독되는 성경본문의 알람표를 교회력에 의한 성서일과(Lectionary)라고 한다. AD 4세기경 만들어진 이 성서일과는 독서를 뜻하는 라틴어 ‘Lectio’에서 온 말로, 공적인 예배에서 회중에게 낭독하기 위해 질서 있게 정리한 성구지을 일컫는다. 강림절 제1주부터 성령강림 후 마지막 주까지, 연가 52주 교회력을 따라 성구를 배열한 주일성서일과와 연간 365일 동안 매일매일 말씀을 묵상할 수 있는 매일성서일과가 있으며, 이것을 3년을 주기로 반복되며 매주 구약성서와 서신서와 복음서에서 말씀을 하나씩 택하여 세 개를 낭독하게 된다. 시편은 매주 응송으로 예배 순서에 포함하고 있다.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회력에 따라 성서일과를 봉독해야만 하는 이유를 구약에서의 예수의 예정과 도래를, 신약의 예수의 생애, 그리고 구원사역의 종말적 완성을 전하고, 구원사업을 계승한 사도들의 활동과 가르침을 신자들에게 봉독하고 강론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해당 교회력에 따른 구약성서와 서신서와 복음서 간의 통합적 메시지를 찾아내는 일이다. ‘보화처럼 감추어져 있는 통합적 메시지’, 목회자는 반드시 그 메시지를 찾아내야만 한다. 여기서 설교의 제목이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력에 따라 성서일과를 작성하는 것은 구슬을 꿰는 노력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해석을 서두르지 말고 묵상에 전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이해하고 설교를 기획해야 할 것이다.

 

3. 성만찬

나형석 교수는 성만찬이 없다면 설교는 무익하고 공허하다면서 그리스도를 받아드리지 않고 드려지는 예배는 무익함을 강조했다. 머리와 귀로 들은 설교는 대개 관념으로 머무르게 되는데 성찬을 통해 주님의 살과 피를 내 안에 모심으로서 이 관념은 비로소 영적 리얼리즘이 되는 것이다.

 

예배의 기원은 유월절 식탁이다.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히브리 노예들이 해방된 사건을 기념하는 식사로서 엄숙하고 의미 있는 종교의식이 행해지는 자리요, 이스라엘 신앙이 전승되는 교육의 현장이기고 하다.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은 유월절에 행해졌으며 이 마지막 식사는 죄와 사망에 사로잡혀 중살이하던 자들이 그 죄와 사망의 사슬에서 놓여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을 기념하는 생명의 식탁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나눔으로 이것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유월절이 되게 하셨고, 또 그 순간이 주님의 살과 피로 나눈 최조의 성만찬이 되게 하셨고, 율법의 시대가 끝나고 은혜의 시대가 오게 하셨다. 식사라는 것은 함께 마음을 나누는 것이고,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초대교회의 예배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원형 그대로 계승해서 재현하고 반복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초대교회의 예배는 그 준비나 절차에 있어서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이 예식은 오늘날의 엄숙한 예배나 미사와는 전혀 다른 하나의 잔치였다. 그들은 이 예식을 예배나 미사라 부르지 않고 아가페라고 불렀다. 즉 처음 초대교회의 예배는 사랑의 잔치였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을 단지 함께 마음이나 사랑을 나누고 섭섭함이나 달래는 자리로 만들지 않았다. 주님은 유월절 식탁으로부터 계승된 이 만찬을 통해 당신의 죽으심의 의미를 제자들에게 설명하고 십자가를 아름다게 하셨다.

 

초대교회는 아포파틱신학(부정신학)의 입장에서 수난과 고난을 중심으로 행해졌다. 이는 마지막 만찬을 지낸 시간과 일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가페의 예식, 즉 사랑과 기쁨의 잔치의 성격이 강화 되면서 카타파틱신학(긍정신학)으로 이어지면서 저녁에 드려지던 성만찬이 부활에 집중하는 아침으로 옮겨지게 된다. 성만찬이 아침으로 옮겨지면서 아침에 드려지던 말씀의 예배와 결합하게 된 것이다. 시간상의 변화는 성만찬의 본 의미를 변질시켰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님의 수난과 고난과 죽음을 앞에 두고 행해졌기 때문에 수난과 죽음을 통한 부활의 의미가 강조되어져야 하는데, 성만찬의 시간을 아침으로 옮긴 이후부터는 수난과 죽음을 제외하고 부활만 강조하게 되었다.

 

이후 프로테스탄트가 등장하면서 경험적 신학에 집중하게 되었고, 예전이나, 성례전을 간소화, 혹은 제하고 말씀에만 치중하는 형태로 변모되었다. 이는 프로테스탄트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특징, 지붕 없는 교회나, 작게 꾸려진 예배당 등 예전을 행하기 어려운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정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에 웨슬리는 주일성찬예배식을 설명하는 서론 부분에서 나는 영국교회의 공동기도서보다 성서적이고 이상적인 경건심을 확고하게 표현하는 예배서는 세상에 없다고 확신한다.” 라고 강조했고, 십자가의 요의가 성찬식에 있음을 확신했다. 웨슬리는 1744년 영국교회에서 주례적 성찬식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매주 성찬식을 고집하며 예전을 가진 교회’, ‘객관적 예배의 균형을 중요시했다.

 

우리가 회복해야할 예배는 무엇인가?

오늘날의 교회는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여러 개혁자들이 물려준 예배의 형태를 성서적, 신학적, 전승적 검토 없이 수백 년 동안 답습해왔으며, 무엇이든 간결하게 단순화하는 청교도적 습관과 실용적 고려로 인해 성만찬을 늘 설교 중심적 예배에서 소외시켜 왔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설교는 항상 성만찬이 지니고 있는 영성적 토대를 대변 혹은 보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교회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 다행히 1982년 리마 예식서의 출현 이후 성만찬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기 시작했다. 리마 예식서는 1982년 남미 페루이 수도인 리마에서 모였던 세계교회협의 신앙과 직제위원회총회를 위해 마련되었고 거기서 최초로 베풀어졌던 세계교회 공동 성만찬 예식서이다. 이 예식서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하나의 역사적 기념비이며 이정표의 의미를 지닌다. 이 문서에서 제시된 6가지의 성만찬의 영적인 특성들은 다음과 같다.

 

1. 성부께 대한 감사와 찬미( 22:17, 고전11:24)

2. 그리스도에 대한 기념’(22:19, 고전11:23-26)

3. 성령의 임재 (6:53-63)

4. 그리스도와의 연합 (고전6:11)

5. 그리스도 안에서의 친교와 일치 (17:21-26, 고전12:13)

6. 나눔과 도움 (2:44-47)

 

지금 우리는 쇄신과 개혁을 위한 하나의 시작을 해야 할 때이다. 그 시작은 참된 예배의 시작이어야 합니다. 참된 예배는 구원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걸음을 따라 걷는 교회력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성만찬을 회복하는 것에서 완성된다 하겠다.

 

이어서 이날 4시부터 5시까지 함께 모인 이들과 부활절 5번째 예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당 주간의 교회력과 성서일과를 따라 성만찬 예배를 시연하였다. 예배는 전적으로 성서일과와 성만찬이 중심이 되어 베풀어 졌어 졌다. 기존의 개신교에서 드리는 예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예배이기에 분명히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리 : 김형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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