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이어도 좋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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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는 이에게 보편적인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현존의식 또는 체험(이하 ‘현존’으로 함)일겝니다. 누구든지 그분과 하나 되는 체험을 하고, 늘 그런 의식(깨어있음)에서 살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없을 것 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체험을 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늘이 아니라도 순간이나마 깨어있는 상태에 있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얼마나 수련을 하면 그런 체험을 할 수 있고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나님의 현존의식 속에서 살 수 있을까? 다들 이런 생각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수련방법들이 제시되고 이곳에도 기웃해보고 저곳에도 기웃해보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요?

 

작년에 일주일동안 관상기도 모임이 있어 참여한 일이 있었지요. 목요일 아침에 한시간 동안 자유롭게 명상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색다른 깨달음이 제게 왔어요. 동쪽에 나있는 창문으로 햇빛이 약간 들어왔어요. 창을 타고 들어온 빛은 그만큼 바닥에 그 표시를 하더군요. 창문의 모양으로 바닥에 표시한 빛은 어둠에 있던 마루바닥을 빛과 그늘로 나누더군요. 창문 틀 만큼이 빛이었고 나머지는 그늘이었지요. 그런데 그늘 속에 있는 저는 어둡지 않았어요. 빛은 보여지는 만큼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그늘에도 비추었던 것이지요. 자연스런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지요. 빛은 비춰지는 만큼만 빛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이었습니다. 빛이 비춰지지 않은 그늘에도 빛은 영향력을 발휘하여 그늘이었지만 어둡지 않았지요. 빛이 비춰지는 만큼의 환한 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둡지 않은 괞찮은 빛이었습니다.

 

그순간 깨달음이 제게 왔습니다. 하나님의 현존이란 꼭 체험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빛이 내게 직접 비춰지지 않아도, 그늘이어도 어둡지 않고 빛의 영향 속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현존도 그러하다고 느껴지더군요. 그늘에 있어도 즉 현존을 지금 여기서 직접 체험하지 않아도 내가 지금 여기에 하나님과 함께, 그분 안에 있음을 받아들이면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현존의식 이었습니다. 빛이 직접 오지 않아도, 내가 그것을 지금 여기서 체험하지 못하여도, 그늘이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늘이어도 괞찮았습니다. 그분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은요.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고 다양한 노력을 하지요. 때로는 성취감도 들고 때로는 낙담하고 자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성취감이나 낙담과 자책은 다 주님이 원하는 것은 아니지요.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고 하고 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사살이지요. 받아들이는 순간,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현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노력은 필요하지 않고 다만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현존의식이고 깨어있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늘 숨을 쉬고 있으면서도 마치 내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처럼, 그러다가 어느 날 숨을 들이 쉬고 내 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 처럼 말이지요. 숨을 들이 쉬고 내 쉬는데 아무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현존도 그러하였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내가 있는 곳이 빛인지 그늘인지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늘이어도 좋았습니다. 내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