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참을 수 있습니다.

 

 

 

김영현 전도사

 

 

평창에서 담임전도사로 교회를 섬긴지 삼년입니다. 서울연회에서 수련목으로 목사안수까지 1년을 남겨두고 있었으나, 농촌목회를 향한 소망으로 모든 진급과정을 포기하고 현재 평창에서 다시 진급 중에 있습니다. 성도가 두 명 뿐인 교회였지만,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평창으로 부임한지 얼마 후에, 서울에서 일하던 교회의 목사님과 장로님 몇 분이 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저를 아주 아껴주시던 백발의 원로 장로님께서 기도를 해주셨지요. “하나님, 우리 전도사님 얼른 다시 서울로 불러주셔서 큰 일 할 수 있게 축복해주세요!” 순간, 아멘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를 위하는 마음에 기도 하신 것을 알고 있기에, “장로님, 저 여기 오래 있고 싶어요”라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손 꼭 붙잡고 ‘목회 열심히 할께요’라고 인사 할 뿐이었습니다.

 

단지, 평신도 장로님의 개인적인 의견이었을까요? 아니죠. 한국교회, 특별히 교단파송제를 상실하고 사사로운 이익에 따라 교회를 사고 팔아왔던 감리교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라시대의 골품제로 신학생들을 구별하여 부르는 것을 들어보셨나요? 아버지나 장인이 큰 교회 목사면 성골, 장로면 진골, 저같이 아무것도 없으면 ‘해골’입니다. 웃픈 말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저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데로 교회의 ‘성장주의’와 ‘물량주의’ 때문이겠지요? 모로가도 서울만가면 된다는 말처럼 성장만 하면, 큰 교회만 갈 수 있다면 ‘사명’이나 ‘부르심’ 따위야 아무 거리낌 없이 ‘작은 교회’를 발판 삼아 ‘메뚜기’처럼 임지를 옮겨 다녔던 목사들 책임이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듭니다.

 

 

감리교 새물결에서 주장하는 ‘목회자최저생계비’와 ‘목회호봉제’제도에 적극 찬성합니다. 생존의 문제로 현재 투잡, 쓰리잡으로 일하며 사명을 감당하고 계신 목사님들을 위해 새물결 모임은 이 제도를 실현시키기 위해 힘을 모아 주십시오. 하지만, ‘돈’과 ‘제도개혁’에 그치지 말아주십시오. 가난은 참을 수 있습니다. 꿈을 먹여주십시오. 저는 자랑스럽고 당당한 감리교단을 꿈꿉니다. 뭇 사람들에게 ‘와서 보라!’하고 소개 할 수 있는 감리교단과 새물결 모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농촌에 있든, 도시에 있든,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지 아무 자괴감도 없이, 또 으스댈 것도 없이 각자의 포도나무 아래에서 주어지고 맡겨진 사명대로 올곧게 목회 할 수 있는 감리교단과 감리교회로 거듭나는 일에 새물결이 마중물이 되어 주십시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러시아의 시인, 나콜라이 네크라소프의 말입니다. 감리교를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지금 이 자리 새물결의 시작에 함께 하고 있는 선배님들께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길 나서는 선배님들이 희망입니다. 저도 따라나서렵니다. 새물결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