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회목회자모임 '새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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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9 13:49

(시안의신앙)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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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180709_140607778.jpg

 

장마

 

김종제

 

 

한 사나흘

바람불고 비만 내려라

햇빛 맑은 날 많았으니

아침부터 흐려 비내린다고

온누리가 어두워지겠느냐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구에게 다 젖고 싶은

그 한 사람이 내게는 없구나

평생 줄 사랑을ᆢ

 

 

한 사나흘

장마처럼 그대에게 내릴테니

속까지 다 젖어보자는 거다

 

 

나는 그대에게 마음을 주었는데 그대는 나에게 인생을 주는군요어느 인도 영화의 대사 중 눈에 띄더군요. 사랑을 감히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혈액형으로 성향을 파악하는 무모한 도전처럼 세간에 떠도는 달콤한 사랑이야기가 전부 일 수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이런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를리 없지만, 노래도 사랑타령으로, 드라마도 멜로 타령으로 얼룩지는 것을 보면 우리는 가닿을 수 없는 어떤 고귀한 지점에 사랑을 설정해 놓고 그저 애타게 그리워만 하는 불가촉애를 추구하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부러 모른다고 반복하는 것은 사랑을 안다는 것에 번복을 하고 싶어서 그러니 눈치를 채셨겠지요. 층도 있고 결도 있고, 그리고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그 양과 질을 달리하는 사랑을 어떻게 계량화할 수 있겠냐는 것이지요.

허나 남녀의 멜로가 아니더라도 우리 안에는 어릴 적 어머니의 젖꼭지를 물고서 무한한 특혜를 받았던 그런 아련한 기억이 무의식에 기반이 되어 있어서 흠뻑 받았으니 흠뻑 주고 싶은 마음도 안에 메아리로 맴도는 것도 그리 상스런 일이 아닐 듯 합니다.

 

 

저는 가끔 비에 젖을 때, 과장을 보태면 어머니 뱃속 안에 양수에 감싸있는 느낌이랄까요.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편안함이 있습니다. 내린 비 고스란히 맞고서 일정시간 지나면 뜨듯한 체온이 폴리에스테론과 살결 사이에서 지글지글 끓으면서 훈훈해지는 그런 순간에 어머니 뱃속에 젖어 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어머니의 그것이 으로 시작하는 것이 어쩌면 비가 는 것과 같은 말품인지 괜한 미스터리를 가져봅니다. 여하튼 사랑은 그렇게 진하고 오랜 기억을 되살리고 세상에서 가장 포근함을 부활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나이가 먹어가면서 왜 남녀의 사랑보다 어머니의 사랑이 더 그리워지는지 청승입니다. 그 내막을 좀 살펴보면 우린 거기서 출발해서 거기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머니로 와서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는 게 인생 한 바퀴 아닐까요.

 

 

하느님의 사랑도, 거기서 왔는데 이내 까마귀에게 기억을 내주고 깜깜했지만 다시 그분에게 젖고 싶은, 그 분의 엄숙함 뒤 켠에 놓인 숨겨진 그 소파에 좀 앉고 싶은 것이에요.

 

 

한 사나흘 이렇게 장마가 내리는 날, 더듬더듬 잊었던 사랑을 좀 찾아보고, 깨졌던 마음도 살펴보고, 땜 빵을 하던 미장을 하던 고 싶습니다. 어머니 꼭지도 다시 물고 싶고요. ‘속 까지 다 젖어 보자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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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8 21:40

거듭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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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_IMG_1475464761417.jpg

 

거듭나야 하늘나라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거듭남의 표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천국을 볼 수 있는 것.

거듭남과 천국과 봄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거듭나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믿는 자들은 다 거듭났는가?

 

거듭남이라는 사건은 우리 신앙의 과정에 있는 세례와 믿음의 수용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일차적으로 믿음의 수용을 거듭나는 사건이라 생각했고, 세례로 그것을 상징했다. 

왜냐하면 거듭난다는 것은 새사람이 된다는 것이고 그것의 바탕은 믿음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믿음을 가졌다는 교인들이 거듭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목사들 까지, 지도자라고 자칭하는 사람들마저도 거듭나지 못한 것 같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들을 그들이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관심 갖는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믿음이라는 새로운 과정을 받아들일 때 일어나는 것 보다는 믿음을 받아들인 이후의 과정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천국은 어떻게 해야 볼 수 있으며, 그때 보여 지는 내용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 일게다.

그런데 그분의 통치하지 않는 곳이 어디이며 그분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어디인가?

그분의 살아있음을 믿고 그분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곳, 그곳이 하나님 나라라면 이 세상은 그 어디나 다 하늘나라다!

 

그러면 우리는 이것을 일상 속에서 어떻게 알아차리며 살아가는가?

그것은 관상적인 삶, 그분의 현존을 깨닫고 그 현존 안에 머무는 삶일 게다.

그분이 내가 있는 이곳에 지금 계심을 알아차리고,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며, 그런 삶이 이뤄질 때 내가 있는 ‘지금 여기’가 바로 하나님 나라임을 볼 수 있다!

 

거듭남은 일회적 사건인가?

아니면 계속해서 일어나야 하는 지속적인 사건인가?

과문한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만일에 영혼의 ‘어두운 밤’이 우리가 거쳐야 할 일회적인 과정이 아니라면 거듭남도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할게다.

거듭남이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면 그 첫 번째 사건은 믿음의 수용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 거듭남은 계속적으로 일어나야 하는가?

물론 한번으로 마쳐지는 특별한 이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커다란 은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잊고 산다.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계심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그분을 잃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분을 잊고 또한 잃어 버렸다면 우리는 일상의 삶에서 그분을 다시 찾아야 하고, 되새겨야 하고, 그분과 다시 이어져야 할게다.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 계심을 알아차리고, 그분이 각 사람 사이에 무언가 움직이고 계시며, 다른 어디에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음을 볼 수 있을 때,  바로 이때가 거듭날 때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볼수 있으며 이미 그의 나라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변화를 거부하는 걸까?

우리가 갖고 있는 현재의 습관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의 껍데기 자아가 우리의 변화를 가로 막고 있다.

왜?

그 변화는 무엇으로의 변화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막고 있는가?

 

우리의 궁극적 변화는 본래적인 나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창조의 목적대로 존재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으로 부터 와서 하나님께 가는 길이라면, 우리가 가는 길도 하나님과 함께 그분과 하나 되어 그분이 되어 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가로 막았던 걸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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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7 19:57

그늘이어도 좋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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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이어도 좋아라

 20150413_074430_HDR.jpg

 

신앙생활을 하는 이에게 보편적인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현존의식 또는 체험(이하 ‘현존’으로 함)일겝니다. 누구든지 그분과 하나 되는 체험을 하고, 늘 그런 의식(깨어있음)에서 살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없을 것 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체험을 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늘이 아니라도 순간이나마 깨어있는 상태에 있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얼마나 수련을 하면 그런 체험을 할 수 있고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나님의 현존의식 속에서 살 수 있을까? 다들 이런 생각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수련방법들이 제시되고 이곳에도 기웃해보고 저곳에도 기웃해보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요?

 

작년에 일주일동안 관상기도 모임이 있어 참여한 일이 있었지요. 목요일 아침에 한시간 동안 자유롭게 명상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색다른 깨달음이 제게 왔어요. 동쪽에 나있는 창문으로 햇빛이 약간 들어왔어요. 창을 타고 들어온 빛은 그만큼 바닥에 그 표시를 하더군요. 창문의 모양으로 바닥에 표시한 빛은 어둠에 있던 마루바닥을 빛과 그늘로 나누더군요. 창문 틀 만큼이 빛이었고 나머지는 그늘이었지요. 그런데 그늘 속에 있는 저는 어둡지 않았어요. 빛은 보여지는 만큼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그늘에도 비추었던 것이지요. 자연스런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지요. 빛은 비춰지는 만큼만 빛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이었습니다. 빛이 비춰지지 않은 그늘에도 빛은 영향력을 발휘하여 그늘이었지만 어둡지 않았지요. 빛이 비춰지는 만큼의 환한 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둡지 않은 괞찮은 빛이었습니다.

 

그순간 깨달음이 제게 왔습니다. 하나님의 현존이란 꼭 체험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빛이 내게 직접 비춰지지 않아도, 그늘이어도 어둡지 않고 빛의 영향 속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현존도 그러하다고 느껴지더군요. 그늘에 있어도 즉 현존을 지금 여기서 직접 체험하지 않아도 내가 지금 여기에 하나님과 함께, 그분 안에 있음을 받아들이면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현존의식 이었습니다. 빛이 직접 오지 않아도, 내가 그것을 지금 여기서 체험하지 못하여도, 그늘이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늘이어도 괞찮았습니다. 그분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은요.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고 다양한 노력을 하지요. 때로는 성취감도 들고 때로는 낙담하고 자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성취감이나 낙담과 자책은 다 주님이 원하는 것은 아니지요.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고 하고 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사살이지요. 받아들이는 순간,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현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노력은 필요하지 않고 다만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현존의식이고 깨어있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늘 숨을 쉬고 있으면서도 마치 내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처럼, 그러다가 어느 날 숨을 들이 쉬고 내 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 처럼 말이지요. 숨을 들이 쉬고 내 쉬는데 아무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현존도 그러하였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내가 있는 곳이 빛인지 그늘인지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늘이어도 좋았습니다. 내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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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0 21:44

빌어 먹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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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dPhoto_2016_12_25_08_41_36.jpg

 

빌어먹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하늘에서 내려온 하늘족속(天孫族)이라 한다. 하늘족속인 우리 민족에 있어서 가장 큰 야단은 아마도 “이놈아,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일게다. 그만큼 우리 선조들은 하늘을 늘 마음속에 담고 살아온 것 같다.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는데 무슨 짓을 하고 있냐?”는 말에 자기의 죄를 고백하곤 했다.
   그리고 욕중의 욕은 “예이 빌어먹을 놈아!” 일게다. 사람이 오죽 못났으면 제 손을 움직여서 먹지 않고 남의 손에 빌부터 빌어먹느냐는 것이다. 거지들이나 빌어  먹는 것이지 온전한 사람이라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자립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남의 종이 될 수 밖에 없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자립하고 자급하지 못하는 나라는 남의 손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그렇다. 
 
   나를 돌아보니 평생을 빌어먹고 있다.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다. 자존심이 강한 나는 늘 이것이 마음에 걸렸다. 천성이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이 어색했다. 그래서 도움의 손길을 주겠다고 한 것을 거절한 적도 많았다. 내가 도움을 주면 주었지 내가 도움을 받는 다는 것이 싫었다. 무언가 모자라고 부족한 것을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누군가를 도울 때 인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되돌아보니 늘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 그것도 능력이라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자존심이 상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늘 교회의 후원을 요청하곤 했다. 농촌선교를 위하여 후원을 요청했다. 많은 분들이 좋은 마음으로 후원을 해줬는데 때론 속이 상하기도 했다. “차목사, 언제까지 남의 후원으로 살아 갈꺼야? 빨리 자립해야지.” “머리가 허연 사람이 언제까지 도와달라고 할꺼야?” 하며
안타까운 둣 이야기를 듣곤 했다. 나의 인격이 무시당하는 것 같았다. 겉으론 웃음를 잃지 않았지만 속에선 부글부글 하곤 했다. 
 
   그런데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빌어먹고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살아간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아졌다.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내가 잘못 사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리소리는 누구의 소리인가’ 하고 물었던 선배가 있었다. 피리소리는 피리의 소리인가? 그렇지 않다. 피리소리는 그 피리의 소리가 아니라 피리를 부는 사람의 소리다. 사람이 불지 않으면 피리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 아무리 좋은 피리라도 말이다. 피리는 다만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다. 우리도 도구일 뿐이다. 
   자아가 살아 있으면 남에게 빌지 못한다. 자존심이 있는데 어떻게 용서해달라고 빌 수 있으며 도와달라고 빌 수 있을까? 그래서 수도자들이 탁발수도를 한 것 같다. 자기의 껍데기를 벗기 위하여, 자신의 자아를 부수기 위하여 남에게 빌어먹는 수도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의 힘으로 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한순간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로 이 세상에 오지 않았다. 부모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 우리의 갖고 있는 생각도 나의 것이 아니다. 부모를 비롯하여 여러 선생님들 그리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들에 핀 꽃들도 우주 자연의 조화로움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듯이 우리도 그러하다. 하늘을 나는 새들도 하나님의 돌보심 없이는 살수 없듯이 우리도 그러한다. 
 
   남에게 빌어먹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아직도 자신을 비우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이다. 자아가 살아 움직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얼마 전 업무를 대행해주는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시간을 내서 모르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했는데 못해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매달 업무대행비를 내지 않기 때문이란다. 빨리 업무대행비를 내서 떳떳하게 하란다. 실은 그 사무실 책임자가 업무대행비를  우리에게 매달 증자형식으로 후원하는 것이었는데 실무자들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문제가 해결되기 까지는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다.. 얼굴이 화끈해졌고 할 말을 잃었다. 괘씸하다는 생각도 들고, 하여튼 속이 상했다. 순간  내 껍데기가 보였다. 내 자아가 살아 움직이고 있던 것이다. 이것이 부끄러웠다.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내 껍데기에 끌려 다니는 것이 부끄러웠다. 내 자아가 살아 움직여 그런 말에 얼굴을 붉히고 속이 상해야 했던 사실이 부끄러웠다. 그런 말을 들어도 한결같음을 유지할 수 있을 때는 언제쯤이나 가능할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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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흥도 2018.06.18 08:30

    빈배는 차흥도의 닉네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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