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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후 제1(가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읽기 | Lectio

 

구약 | 63:7-9

 

7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8 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 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9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 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응송 | 148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이시로다 할렐루야

 

서신 | 2:10-18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 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 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 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 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 실 수 있느니라


복음 | 2:13-23

 

13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 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 하신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 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19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20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 가니라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 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 으로 떠나가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묵상 | meditatio

 

2:15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헤롯을 피해 애굽으로 보내신 어린 예수를 애굽에서 다시 불러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2:18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울 수 있었던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가능했습니까?

 

63:7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자비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기 도 | Oratio | 5-10

묵상 나눔



공감(共感), 세상을 살리는 힘

 

2023년 새해의 첫 주일과 더불어 성탄 후 첫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주님의 이끄심을 따라 걷는 새해 첫 시간이 주 안에서 영원까지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안도현 시인은 이렇게 '새해의 기도'를 올립니다.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조아리고 새해에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나 자신과 내 가족의 행복만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한 번이라도 나 아닌 사람의 행복을 위해

꿇어앉아 기도하게 하소서

 

한 사람의 기도가 시냇물처럼 모여들어

이 세상 전체가 아름다운 평화의 강이 되어

출렁이게 하소서

 

새해에는 우리 기도도 시인의 기도처럼, 나 아닌 사람의 행복과, 이 세상 전체의 평화를 위한 기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빽빽한 스케줄과 이런저런 계획들의 보이지 않는 리듬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진정으로 필요한 무언가에 대한 목마름을 은연중 가지게 됩니다. 그 목마름에서 비롯된 우리의 기도가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가 아닌, 우리 땅에서 약자들을 위협하는 모든 불의를 개선하기 위한 기도, 억압적인 사회구성체를 변혁하고, 이 땅을 하나님의 공의가 흐르는 땅으로 가꾸려는 기도가 될 때, 그 기도는 우리 마음을 일구고 가꾸는 영혼의 힘이 될 뿐 아니라, 우리 땅에 하나님의 공의를 깃들이게 하는 참된 힘이 될 것입니다.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무책임이 문화가 되고 폭력이 정치의 유산이 된 사회에서 자행되는 죄를 '법적인 죄, 형이상학적 죄, 도덕적 죄,정치적 죄' 4가지 죄() 개념으로 압축해서 설명합니다.

 

법적인 죄는 유사 이래로 범법자와 피해자, 그리고 법률가의 집요한 관심사였다. 형이상학적 죄는 인간의 비참한 운명에 공명하는 예술가적 인간에게 영감을 부여한다. 도덕적 죄와 정치적 죄는 윤리학자나 정치 철학자들의 사유를 자극한다."

 

2차 대전 직후 독일 현대사에서 자행된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두고서 한 말인데, 여기서 야스퍼스가 지적하는 죄는 소수의 독일 전범들에게 적용된 법적인 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나치를 지지했던 시민들에게는 정치적인 죄가 있으며, 나치의 만행을 자신들 사유(思惟)의 도구로 삼아버린 윤리학자나 정치철학자들에게는 도덕적 죄가 있으며, 인간의 비참한 운명에서 영감을 얻은 예술가적 인간에게는 형이상학적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땅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사회가 소수의 권력자들에게 유린당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불의를 바꾸려는 기도도 하지 않고 그 어떤 실천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야스퍼스가 지적하는 4가지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어린 예수님께서 처했던 당시 권력자에 의한 폭력적 사건을 보여줍니다. 마태는 이렇게 오늘 말씀을 시작합니다.

 

그들이 떠난 후에 | 2:13a

 

여기서 마태가 말하는 '그들'은 동방박사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비록 마구간이었지만 살뜰한 축하와 선물 속에서 성탄의 기쁨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떠난 후 어린 예수는 무자비한 살해의 음모에 직면합니다.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 2:13b

 

성경에서 꿈은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는 통로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주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하는 말이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어둡고 사람이 악해도 그렇지 어떻게 아기들을 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당시 헤롯은 자기 신하들조차 믿지 못해서 항상 감시했고, 사방에 스파이들을 두어서 정부에 대한 일체의 불만들을 철저히 봉쇄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권좌를 유지하기 위해 아내와 장모, 자식들까지 죽이는 등 친족살해도 서슴지 않는 잔인한 인물이었습니다. 심지어 자기 죽음을 앞두고, 자기 죽음에 슬퍼할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알고, 유다의 각 가정마다 한 사람씩 죽여서 자기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도록 하라고 유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 잔인한 왕으로 인해 아기와 함께 낯선 땅으로 피난을 떠나야 하는 어린 부부의 가련한 현실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 2:16-18

 

아기 예수님이 피난을 떠난 후, 헤롯은 광분해서 끔찍한 살육(殺戮)의 피바람을 일으키고 맙니다. 이 끔찍한 상황에 대해 마태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며 오래 전 예레미야 선지자의 기록(31:15)을 떠올립니다. 라마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고(18:25), 그 부근에는 요셉과 베냐민의 모친인 라헬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는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바벨론으로 끌려갈 때(40:1, 2), 라헬이 무덤 속에서 포로로 끌려가는 자녀들을 바라보며 통곡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인데, 마태가 라마에서 가까운 베들레헴의 유아학살로 인해 엄마들이 통곡하는 모습을 보며 라헬의 통곡을 떠올린 것입니다. 이 기막힌 유아 살해사건에 대해 페트루스 크리솔로구스는 자신의 설교집에서 가슴 아픈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유아들이 당신 때문에 잔혹하게 죽임을 당하리라는 것을 아셨는데, 왜 이 아기들을 버리셨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던진 질문을 스스로 성찰한 끝에 이런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싸우지 않고 승리를 얻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들의 몸이 자라기도 전에 그들에게 왕관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들이 악을 넘어 덕으로 건너가 하늘에 닿아 곧바로 거룩한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뜻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퀼레이아의 크로마티우스는 유아 학살에 대해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그리스도 대신 죽은 이 죄 없는 아기들은 그리스도의 첫 순교자들이 되었습니다. 이 박해 때에 젖먹이들이 그리스도 대신 죽임을 당하며 순교자의 완전한 찬미를 바쳤습니다. 그러므로 그 복된 아기들은 마땅히 어느 누구보다 오래 산 셈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죽을 자격을 지녔던 첫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교부들의 성찰과 해석에 대해 우리는 일말의 이해와 공감을 가슴에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자비한 살육에 어린 자식을 잃고 통곡하는 엄마들의 슬픔을 아는 우리로서 온전하게 납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 2:14, 15

 

마태의 이 증언을 곰곰이 묵상하다 보면, 살육당한 유아들에 대한 교부들의 해석이 매우 성서적이고 복음적임을 알게 됩니다. 희망의 신학자인 위르겐 몰트만(Jűrgen Moltmann)에 의하면, 그리스도교 역사는 한 위대한 수난의 역사이며,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향하여 자기를 바친 열정적 헌신의 역사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열정적 헌신에 속한 고난을 기꺼이 간과한 채, 고통 없이 행복해지려는 꿈을 꾸지만, 그러나 몰트만에 따르면 예수의 메시아적 열정은 그에게 묵시 사상적 고난을 가져왔는데, 예수는 자신의 고난을 예고했을 뿐 아니라, 고난을 향하여 자기의 뒤를 따르라고(8:27-35) 제자들을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베들레헴의 학살당한 유아들은 이미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첫 순교자들이 된 것입니다. 들은 그리스도를 대신해 죽음으로써 순교자의 완전한 찬미를 바친 것이고, 그리스도는 33년 후 죽임 당하심으로써 천국에서 그들과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마태에 따르면 예수는 죽음을 피해 애굽으로 가지만, 애굽에서 고난을 겪다가 다시 불러냄을 받습니다. 이때 마태가 호세아 선지자의 예언(11:1)을 인용하면서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2:15)라고 한 것은, 과거에 히브리들이 애굽에서 모진 고난을 겪다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러내셨듯이(23:22;24:8), 어린 예수도 애굽으로 피난 가 고난을 겪다가 하나님께 불러냄 받았음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삶으로 감내해낸 고난이 있었기에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가난한 자들과 포로 된 자들과 눈먼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었습니다. 오늘 서신서에서 히브리서 기자 역시 그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많은 자녀들이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로 하여금 고난을 겪게 해서 완전하게 하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 2:10 공동번역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고난에 던져 넣으신 것은 그 고난을 통해 완전하게 하시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완전함이란 예수님 개인을 위한 완전함이 아닌, 당신께서 구원하셔야 할 사람들을 위한 완전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 보십시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 2:11, 12

이 말씀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2:2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라고 했고, 4:44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거룩함을 입어 '주님과 한 근원에서 난 자'가 되고, 주님은 그런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습니까? 어린 시절 헤롯의 칼날을 피해 애굽으로 구차한 피난길 떠나셨던 예수님을 다시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불러내셨을 때, 어리신 주님은 이미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신 후였습니다. 애굽에서 돌아오신 어린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에 있는 나사렛이란 동네에 정착하십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사람(Nazraios)이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나사렛 사람이라고 할 때, 그 표현에는 '네체르(netzer)' '줄기, 가지'라는 어원에서 파생한 '이새의 줄기'라는 의미와 성별된 존재로서의 '나실인'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소외된 땅 나사렛에 살던 그들을 향한 경멸의 의미가 더 깊이 배어있었습니다. 주님은 그 소외된 땅의 사람으로 살면서, 나사렛 사람들의 열등감과 경멸을 함께 견디며 어린 시절을 보내셨습니다. 유아 시절의 예수는 칼날의 위협을 견뎌야 했고, 어린 시절의 예수는 경멸의 시선을 견뎌야 했습니다. 어두운 데서 향기롭게 익어가는 포도주처럼 그렇게 예수님의 시간은 숙성되어 갔습니다. 그런 예수님이었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최종적으로 증언합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 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 2:18

 

예수님께서 먼저 시험과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시험과 고난당하는 이들에게 공감하실 수 있었고, 그들을 도우실 수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사야 선지자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고난을 받을 때에 주님께서도 친히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셔서 그들을 구하게 하시지 않고 주님께서 친히 그들을 구해 주셨습니다. 사랑과 긍휼로 그들을 구하여 주시고, 옛적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치켜들고 안아 주셨습니다. | 63:9 표준 새 번역

 

오늘 복음서와 서신서와 구약성경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은 그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시험당하시고 고난당하심으로써 당시 민중들이 당한 시험과 고난을 공감하시고, 나 아닌 사람의 행복을 위해 당신을 던지셨다는 것입니다. 30여 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며 12천여 명의 속마음을 듣고 나누었던 정혜신 선생님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녀는 그중 15년을 1970-1980년대의 고문생존자와 자살이 이어지던 해고노동자 집단, 세월호 유가족 등 국가 폭력 피해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그들의 신음소리를 생생하게 들었고, 회복이 불가능할 것 같은 내상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그녀가 깨달은 것은 트라우마의 현장에선 심리 치유 전문가 자격증이 무용지물이었다는 것입니다. 대신 "집에 앉아있을 수만은 없어서 무작정 왔다"는 자원 활동가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울면서 무슨 일이든 하더라는 겁니다. 피해자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했으며,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피해자들에게 가장 위로가 되더라는 겁니다. 그러한 경험을 하며 쓴 책이 '당신이 옳다'인데, 책에서 그녀가 계속 강조하는 것이 '공감'입니다. 그녀에 따르면 '공감''빠르고 정확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고, '사람을 살리는 결정적인 힘'인데, 이 공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공감이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이고,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고, 예수님께서 사는 법이었습니다.

 

2023년 새해가 밝아왔는데, 세상은 여전히 라마에서 우는 통곡소리가 그치지 않습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공감은 빠르고 정확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고, 사람을 살리는 결정적인 힘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애굽에서 불러내셨듯이, 우리를 애굽에서 불러내어 소명을 주셨으니, 예수님께서 나사렛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셨듯이, 우리도 이웃과 형제의 아픔에 공감하며 2023년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실천 | Praxio

 

이웃에 공감하지 못한 채 이기적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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