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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교회 회복을 위한 교회론적 요인 고찰

 

박도웅 목사 (동인교회)

 

* 이 글은 필자가 2023년 2월 27일 새물결 제6차 총회에서 한 세미나의 자료입니다.


1. 들어가는 말

 

오늘의 한국교회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많다. 내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본래의 사명에 충실하고 있는지 묻는 이들이 있고, 외적으로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에 적합한 사역을 하고 있는지 묻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교회는 본래 베드로의 신앙 고백 위에 세워진 인간들의 신앙공동체이다. 그러나 지구적으로 선교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이질적인 종교와 문화를 접해야 했고, 성경이 말하는 소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우선적인 사명으로 삼았다. 그러나 기독교 인구가 증가하고 교회가 비대해지면서 중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건설되었던 기독교 왕국(Christendom)이 걸었던 오류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지 염려된다. 한국감리교회 역시 그러한 우려에서 자유롭지 않다.

선교 초기 한국사회에 주었던 선한 영향력은 21세기 들어와 교단과 개체 교회의 여러 갈등과 분쟁 가운데 급격하게 약화되고, 최근에는 급격한 교인 감소가 통계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부흥과 회복을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저마다 각각의 진단과 처방을 주장하고, 그 이면에는 개체교회 성장을 우선으로 하는 자기중심적 사고와 사역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세상이 교회를 보는 시선은 갈수록 차가워지고 있는데, 교회 안에서는 황금시대를 그리워하며 세상과 멀어지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의 공적 사명과 역할을 살피고 현대 사회에 적합한 교회론을 정립하고, 그 토대 위에서 새로운 사역의 전망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이 요구된다. 본고는 그러한 목적의식에서 오늘의 교회 현실과 성서와 교회사가 전하는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을 밝히고, 현대 사회에서 교회의 공적 정체성과 책임을 지지하는 교회론적 요인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오늘의 교회를 보는 시선들

 

20221115일자, 기독교 인터넷 매체 <뉴스앤조이거룩한 범죄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충격적인 기획기사를 보도했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10년간 법정에 선 목회자들의 사건을 종합, 분석한 기사였다. 뉴스앤조이가 분석한 성직자들(목회자, 전도사, 신학생, 선교사 등)의 성범죄 형사사건은 모두 283건에 성직자 피의자는 259명이었다. 기사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1)

 

목회자 성폭력 피해자는 '여성', '아동·청소년' 그리고 '인적 신뢰 관계'에 집중돼 있 었다. 판결문에 나오는 피해자는 총 529명인데, 이 중 515(97.4%)이 여성이었다. 남성 피해자는 12(2.3%)이었고, 나머지 피해자 2명은 성별을 파악할 수 없었다. 연령대를 확인할 수 있는 피해자는 총 479명이었다.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40 (45.4%)이 미성년자, 즉 아동·청소년이었다. 여기에는 10세 미만 피해자도 24명 포함돼 있었다. 성인 피해자는 239명인데, 그중 20대가 156명을 차지했다. 전체 피해자중 20대 이하 피해자의 비율이 74.9%에 달했다.

 

성범죄는 '이단''정통'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기하성 소속 박 아무개 목사(103)가 징역 15년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전 익산노회장 윤 아무개 목사(198)와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임 아무개 목사(242),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 노 아무개 목사(96)는 각각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징역 10년 이상을 선고받은 사람은 18명으로 집계됐다.

 

가해 목회자 259명 중 34(13.1%)은 이미 성범죄 전과가 있는 '동종 누범'이었다.

특히 조 아무개 목사(243·244·245)는 불법 촬영, 음란 메시지 전송 등으로 전과만 6회에 달했다. 상담사로도 일했던 강 아무개 목사(4·5)2012년 강간 미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출소 후에도 반복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 2016년 내담자들을 강제 추행해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후, 2021년 또다시 강제 추행을 저질러 현재까지 복역 중이다. 경남 창원에서 목회하는 송 아무개 목사(163·164·165)2012년부터 공연음란죄로 벌금형을 3, 징역형을 1회 선고받았지만 현재도 목회를 계속하고 있다.

 

교회 안팎에서 이러한 범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히 듣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통계와 형량을 수치로 대하는 것은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한국교회는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자정능력을 상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개인이나 공동체의 정체성은 두 가지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스스로 생각하는 정체성과 외부에서 보는 시선이다. 두 영역이 완전하게 일치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하는 영역과 외부의 평가가 완전하게 분리된다면 그 또한 심각한 상황인식이 될 것이다. 한국교회를 향한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일부 성직자들의 도덕적 일탈, 목회직 세습, 성적 스캔들, 잘못된 재정 운영이 사회적 주목을 받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비판적인 평가가 형성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안들을 일부 교회와 목회자들의 문제로 변증하고 잘못된 일반화를 경고하기에는 현실의 교회가 역부족한 측면이 있다.

1997, 한국갤럽이 실시한 한국종교의 실태 조사에는 종교에 대한 불신 이유들을 응답한 내용이 나온다.2) 특별히 개신교가 다른 종교들에 비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항목들이 소개되었는데, “참 진리보다 교회 확장에 더 관심한다는 응답이 76프로에 이르고 있다. 헌금을 강요한다는 항목도 다른 종교에 비해 두 배 이상의 부정적 응답을 하고 있고, 성직자의 자질이 우수하다는 항목에서는 불교와 가톨릭에 뒤지고 있다. 22.8프로의 응답자만이 개신교 성직자의 자질이 우수하다고 응답하였다. 손규태 교수는 한국교회의 신뢰성 상실의 원인으로 복음으로부터의 일탈 현상, 성직자들의 도덕적 일탈, 교회운영의 비민주성, 군사문화의 영향을 들었다.3)

25년이 지난 2023,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어떻게 변했을까? 기독교, 특별히 개신교를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부정적 여론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가 최근 발표되었다. 2023216, 사단법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발표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결과는 교회를 보는 한국사회의 시선이 더욱 차가워진 것을 보여준다.4) 일천 명의 유효표본이 응답한 동 조사에서 한국교회에 대한 긍정적인 응답은 21프로인데 반해 신뢰하지 않는다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74프로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응답의 배경으로 신자 아닌 사람들이 많은가 하면 그렇지 않다. 스스로 신앙심이 깊다고 밝힌 이들이 45.8프로이고, 보통이라고 응답한 이들이 36.8프로이다. 신앙심이 깊지 않다고 밝힌 이들은 17.4프로이다. 결국 신앙심이 깊거나 보통인 이들이 80프로 넘게 참여한 조사에서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하고 있다. 구체적인 질문과 응답 중 눈길이 가는 항목은 기독교 목사의 말과 행동에 대한 질문이었다. “목사의 말과 행동에 믿음이 간다는 질문에 긍정이 20.8프로, 부정이 74.6프로를 차지하고 있다. 이어지는 기독교인의 말과 행동에 믿음이 간다는 물음에는 긍정 20.6프로, 부정 75.2프로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친근감있는 종교를 묻는 물음에 불교 23.2프로, 가톨릭 19.9프로, 기독교 19.6프로로 응답하였고, 가장 호감이 가는 종교에 대한 응답은 가톨릭 24.7프로, 불교 23.4프로, 기독교 16.2프로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친근감이나 호감 자체가 없거나 모르겠다는 응답이 33.4프로, 31.6프로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사회는 더 이상 교회에 대하여 기대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부정적 인식이나 비판은 기대하는 바에 미치지 못하는 대상을 향하여 갖는 감정이다. 기대하지 않으면 비판할 필요가 없다. 원래 그런 집단으로 비춰진다면 부정적인 인식보다 더 무서운 무관심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체감하는 무종교, 혹은 무신론적 성향은 수치로 드러난 이상이다. 필자는 감리교회 계통 대학에서 10여 년간 기독교 개론을 강의하면서 첫 수업에서 학생들의 종교를 조사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40명 중 7-8명 정도가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1-2명이 기독교인이라고 밝히고 있고, 한 명도 없는 반도 적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급속히 무종교 사회로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심히 염려하게 되는 이유이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여론조사 자료집에 한국교회가 개선해야 할 우선적인 요인을 질문한 항목이 있다. 개선이 요구된다는 것은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는 뜻이다. 이 항목에서 응답자의 절반이 한국교회가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정직하지 못하다고 응답하였다. 기독교인이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정직하지 못하다면 그들의 신앙은 올바른 것이 될 수 없다. 심각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는 길 잃은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하고,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그러나 오늘의 사회는 교회가 그러한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내적인 정체성과 외적인 정체성 사이에 커다란 간격이 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워진 교회가 세상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이다.

 

3. 성서의 교회론

 

교회를 언급하는 성서의 구절들은 모두 신약성경에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본문 마태복음 1618절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복음서들 중 마태복음만 전하는 이 본문에 대하여 베드로 계열의 신앙공동체가 바울 계열의 신앙공동체에 대하여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추가된 구절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학자들의 입장 차에도 불구하고 이 본문은 오늘의 교회와 같은 제도적인 교회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부활 이후 제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신앙공동체를 말씀하신 것으로 보는 입장이 많다.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로 활약하면서 많은 교회들을 세웠다. 신약성서의 교회론은 바울이 세운 교회에 보낸 서신들을 통하여 성립되었다.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들에 보낸 편지들을 통하여 교회의 토대와 목적을 밝혔고, 선교와 목회의 가이드라인을 보여주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교회를 통하여 나타나야 한다고 믿었다. 그 위에 사도행전에 소개된 것처럼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통하여 교회가 되어간다고 보았다. 바울은 성령이 인도하고 역사하는 교회가 올바른 교회라고 가르쳤다. 그러한 가르침은 세 가지 특징 혹은 이미지로 요약되는데,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이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스스로 정의하였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이방인들에게 확대하면서 교회가 이스라엘의 언약 백성의 신분과 유업을 이어간다고 보았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표지는 교회의 통일성과 지체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개념이다. 각기 다른 형태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한 몸에 붙어있기에 하나라는 것이다.5)

예수님의 지상 사역 중에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이들이 예수님의 기적과 말씀, 부활 사건을 보거나 듣고 따랐기 때문에 그들을 상세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하면, 먼저 가족을 떠나 전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했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과 선교의 사명을 공유하며 활동하였다. 다른 이들은 가족과 직업을 유지하면서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음식과 숙소를 제공하고, 재산을 기부하고, 옆에서 봉사한 사람들이다.6) 반면에 유대인들이 중심이 된 예루살렘 교회를 떠나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율법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이 중심이 된 안디옥 교회가 있었다. 그들은 처음으로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받아, 바울 교회의 선구자가 되었다.

신약학자 두한(Helen Doohan)은 이러한 바울 교회의 특징을 하나님의 백성, 새로운 피조물, 그리스도의 몸, 교제, 에클레시아라는 다섯 가지 모델로 설명한다.7) 특히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교회를 설명하면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메시아적 삶의 질과 모습을 의미하는 동시에, 세계를 보는 전적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선교적 차원도 포함된다고 해석하였다.8) ,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의 변혁의 터전임을 증언하고 대행하는 것이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교회라는 것이다. 그는 바울의 교회론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앙적 삶의 차원, 신앙의 공동체성, 부활한 주가 성령 안에서 임재한 것, 그리고 삶의 끊임없는 변혁과 세계 변혁을 향한 신앙인들의 책임이 그 이면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신약성서의 교회론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출발하여 이방인의 교회로 확장되고, 복음전도와 선교를 사명으로 이해하면서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증언하고 실천하는 신앙공동체로 발전되어 왔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교회를 공적인 공동체로 보는 관점이 있다. 이러한 관점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성령의 충만한 현존, 평등 공동체, 사랑의 친교(코이노니아) 공동체, 섬김(디아코니아)의 공동체, 세계변혁적인 종말론적 대안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선취적 현존이다.9) 성령의 임재가 교회의 출발과 동력이 되었다면, 그 기초 위에 세워진 교회 공동체는 모든 구성원들이 평등한 공동체였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버지가 되고, 그리스도만이 스승이며 지도자가 되었다. 마태복음은 이 점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23:8-10). 또한 세계 변혁적인 종말론적 대안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동시에 세상을 향하여 부름을 받는다. 세상으로부터의 분리와 세상을 위한 변혁, 세상으로부터의 자유와 세상을 향한 사랑의 변증법적 관계성 안에 교회의 의미와 사명이 존재한다.”10) 김균진은 몰트만의 교회론을 소개하면서 신약성서의 교회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 혹은 공동체로서 실존하는 그리스도라면,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계속해야 한다. 그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대해 책임적 존재였다면, 교회도 이 세상에 대해 책임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 예수의 모습을 닮고 예수의 하신 일을 뒤따라 하는 여기에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 있고, 존재 이유와 목적이 있다.”11)

 

4. 신학적 교회론


신약성서의 교회론을 기초로 이천년 교회사는 신학적 교회론을 발전시켜왔다. 기독교 신학은 초대 교부들부터 시작하여 현대 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과 교회, 세상의 관계를 해석하고 설명하였다. 물론 처음 교회의 주된 관심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이었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의 신성과 인성을 둘러싼 지난한 논쟁으로 삼백년이 넘는 시간을 소비하였고, 그 후에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이신 그리스도를 고백하게 되었다. 신학적 차원에서 독립적인 주제로 교회론을 논하기 시작한 것은 중세기이지만, 그 후로 교회론은 대부분의 신학자들의 중요한 관심이 되었다. 주요 신학자들의 교회론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1) 어거스틴의 교회론

서방교회의 정통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히포의 주교 어거스틴(354-430)은 서방교회의 교회론을 정립한 인물이다. 그는 터툴리아누스와 키프리아누스, 옵타투스의 교회론에 영향을 받았고, 교회의 거룩성을 수호하기 위하여 온힘을 기울이면서, 교회의 거룩성의 근원으로서 성례전의 가치를 강조하였다. 어거스틴은 니케아신조가 공표한 교회의 네 가지 표지인 단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을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어거스틴은 당시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위세를 떨치던 도나투스파와 논쟁을 벌였다. 도나투스파가 주장한 아프리카의 교회만이 유일하고 거룩한 교회라는 입장을 배척하면서 전 세계의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보편적(가톨릭) 교회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가톨릭교회가 추구하는 올바른 길을 말했는데, 그 길은 이단이나 분리주의자들을 무작정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품고 함께 하면서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추구하며 나아가서 모든 사람들이 영혼의 구원에 이르고 영적인 민족으로 세움을 억기 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것이다.”12) 어거스틴은 사랑과 겸손을 강조하면서 개인적 윤리일 뿐 아니라 교회론적으로 중요한 가치로 보았다. 그는 일치는 언제나 사랑의 열매이고 사랑은 성령의 열매이다. 교회의 일치를 위한 사랑은 결과적으로 성령의 사역의 특별한 증거가 된다고 말했다.13) 그는 삼위일체론에서 성령이 성부와 성자를 연결하는 매개가 되는 것처럼, 성령이 교회일치의 상징과 능력이 된다는 교회론을 전개하였다. “교회의 일치를 반대하는 자는 사랑을 반대하는 자이고 그런 사람은 더 이상 성령을 가지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14)

그는 교회의 니케아 신조의 네 가지 표지를 교회의 본질이라면, 교회를 정의할 수 있는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몸, 어머니 교회, 신의 도성을 제시하였다. 정홍렬 교수는 어거스틴의 교회론에 대하여, “어거스틴의 정신은 오늘날 신앙의 보편성을 상실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보편성을 무시하고 분열로 치닫는 교회들에게 다시금 보편적 신앙을 회복하고 그리스도교회의 일치운동 및 교회연합운동에 힘을 모아야 할 과제를 일깨워주는 경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15)

 

2) 아퀴나스의 교회론

중세기를 대표하는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대표작 신학대전뿐 아니라 대이교도대전이나 신학요강에서도 교회론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윤리 이념에 입각하여 인간의 존재 이유가 행복의 추구라는 관점에 동의하면서, “인간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행복은 다만 하나님의 본체를 보는 것에 있다고 주장하였다.16)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아퀴나스가 명시적으로 기술하지 않았지만, 그의 교회론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 신비적 몸으로 보았던 중세 기독교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교회론의 중심 주제는 신비적 몸”, “성령의 창조물”, “혼합된 사회”, “신실한 자들의 회중이라고 할 수 있다.17)

아퀴나스로 대표되는 중세의 교회론은 로마교회의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성직자 중심의 교회 체계와 동일한 의미였고, 사제들이 행하는 성례전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의미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라기보다 성례전을 행하는 성직자들의 모임이었다. 은준관 교수는 중세기 교회론의 특색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18) 하나는, 로마 교황이 보편적 수위권을 획득한 후에 형성된 교회의 절대권으로, 교황과 교회와 동일시하였다. 또 다른 특색은 일곱 개의 성례전을 정착시키는 가운데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살과 피라는 화체설을 정립한 것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아퀴나스의 교회론 역시 성서적이고 본질적인 의미보다 성례전의 집행이라는 기능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그러한 교회론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과 교회의 성립과 성례전의 유효성 등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데,19) 이는 성서의 진술이나 초대교회의 전통에 비추어 볼 때 적절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전체적인 틀에서 볼 때 아퀴나스의 교회론은 교황 중심주의, 성례전주의, 교권주의(사제중심)의 위험성을 담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20)

 

3) 칼 바르트의 교회론

칼 바르트(1886-1968)는 말씀의 신학, 사건의 신학, 변증법적 신학을 전개한 19세기 유럽의 대표적 인물이다. 19세기 유럽을 지배한 자유주의 신학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의 절대성을 선언하는 신정통주의 신학으로 귀결하였다. 신정통주의신학이 정통주의신학과 구별되는 점은 현실의 불의와 악에 맞선 것이다. 바르트는 히틀러의 전체주의에 저항하였고, 이차대전 이후 등장한 반공주의가 동구의 무신론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바르트의 교회론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삼중직이다. 그는 그리스도가 제사장, , 예언자의 세 가지 직분으로 하나님과 세상을 화해케 하셨다는 화해론을 전개하였다. 화해론의 핵심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땅에 내려오신 하강운동,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승천하는 상향운동,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을 새롭게 연합하게 하시는 종말론적 연합이다. 하나님의 하강은 제사장적 선교, 그리스도의 상향은 왕의 선교, 하나님과 세상의 연합은 예언자적 선교라고 할 수 있다.21) 화해론이 설명하는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과 각각 연결된 선교적 사명은 하나님, 세상, 교회의 영역에서 창조, 화해,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패러다임이다.

바르트의 교회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공통적인 부분은 교회론의 토대를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 성령의 역사로 보는 것이다. 바르트에 의하면, 교회는 성령 안에서 모이고, 고백하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공동체이다. 그는 사도행전에서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모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무리는 아직 교회로 볼 수 없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오순절 사건을 거치며 세상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교회라고 정의하였다.22) 이러한 구조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유비라 할 수 있는데,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아 모이는 교회, 든든히 서가는 교회, 그리고 세상 속으로 파송받는 교회로 구분할 수 있다. 이형기 교수의 설명을 보자.

 

이 교회는 성령의 역사 가운데 그리스도의 제사장직 수행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 리스도의 왕직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 그리스도의 예언자직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고 있고, 동참해야 한다. 즉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와 복음 을 통하여 사람들을 성령 역사로 믿고 의롭다 함을 받아 모이는 교회공동체의 구성 원이 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의 복음을 통하여 이 믿는 공동체의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야 하며, 이들 거룩하게 되는 공동체를 동일한 화해의 복음을 통하여 이 세상으로 파송하여 온 인류가 종말론적으로 하나님과 온전히 화해하여 연합할 것을 희망하면서 이를 역사 속에서 구현하기 위하여 힘쓰고 애써야 할 것이다.23)

 

바르트의 교회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 사건”(Totus Christus)이라는 빛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교회는 온 세계와 온 인간의 화해와 구속을 위한 그리스도의 존재 사건을 이해할 때에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세계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가능성이 교회의 구조와 방향 설정의 근거가 되고, 그리스도 사건을 통해 세계와 전 역사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선행적 사건만이 교회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와 활동의 유일한 근거와 영역이 되는 것이다.24) 바르트는 복음전파와 세상에서의 하나님 나라 구현이라는 교회의 과제를 구분하지 않고 통전적으로 이해하였다. 그러한 교회 이해는 화해론을 통하여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와 그 연장선에서 세상을 위한 교회라는 개념을 정립하였다. 바르트가 대표하는 신정통주의 신학은 교회를 하나의 사건으로 보면서 신학적 교회론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25)

 

4) 몰트만의 교회론

위르겐 몰트만(1926- )은 현대신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한국교회와 신학에 널리 알려진 학자이다. 희망의 신학(1964)으로 출발한 삼위일체 신학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1972)을 거쳐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1975)로 완결되었고,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몰트만의 신학을 규정하는 개념은 시대를 거치며 여러 단계의 변화를 거쳐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학을 관통하는 중심적인 주제는 종말론의 빛에서 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희망의 신학에서 그는 하나님은 피안에 저편에 계신 것이 아니라 오고 계시고, 오시는 분으로 현존하신다. 그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새로운 세계, 그리고 의와 진리의 새로운 세계를 약속하신다고 밝혔다.26) 이러한 하나님 이해는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 행위로 실재가 되었고, 삼위일체 신학의 중심 메시지가 되었다.

몰트만의 교회론은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에 집약되어 있는데, 전통적인 교회론을 답습하기보다 교회의 실천적인 특성과 친교 공동체로서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그는 이차대전을 통하여 세속의 전체주의와 결합한 독일 국가교회를 경험하면서 그 과정에서 교회의 제도화와 영성의 사사화, 신자들의 공적 신앙의 상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고양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유사한 정치 환경에 있던 제삼세계 교회의 호응을 받았고, 한국교회도 그러한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몰트만의 교회론은 이론적 연구에 그치지 않고 현실의 경험과 실제적 자료들을 제시함으로 보다 많은 공감을 얻었다.

전 생애에 걸쳐 정치적 해방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온 몰트만은 신학의 사명이 성서와 세계를 해석하는데 그치지 않고, 세계를 변혁하는데 있다고 믿었다. “즉 교회는 세계 속에서의 정치적, 경제적 해방과 진정한 인간화를 위한 사회적, 정치적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27) 최근 그의 신학은 공적신학, 혹은 공공신학의 영역으로 발전하여 인간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책임적으로 응답하고 실천할 것을 주장하였다. 몰트만은 자신의 교회론을 메시아적 교회론혹은 관계적 교회론으로 정의하였다.28) 메시아적이라는 말은 종말을 지향하는 기독론적이라는 뜻을 담고 있고, 관계적이라는 말은 교회론의 지평을 확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교회는 자신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세계와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설명이지만, 현실에서 그렇지 못한 교회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몰트만의 교회론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개념 위에서 몰트만의 교회론은 삼위일체론적 교회론, 메시아적 교회론, 성령론적 교회론, 종말론적 교회론으로 구성된다. 삼위일체론적 교회론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논하고 있다.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를 향한 운동 혹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그는 참된 교회는 해방 받은 자들의 찬양이다. 교회는 인간 상호간의 연합, 사회와 자연의 연합, 피조물과 하나님의 연합에 참여한다고 말한다.29) 메시아적 교회론은 교회의 기초와 원인 및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는 기독론적 중심성을 강조한다. 그는 그리스도가 없으면 교회가 없다. 교회론은 ... 하나님의 그리스도인 예수와 불가분리하게 연결되어 있다. 교회가 자신에게 이름 지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를 그의 교회의 주체로 보고, 교회의 삶을 그에게 조율할 것을 요청한다. 교회론은 오직 기독론으로부터 발전될 수 있다. 교회론은 기독론의 결과요 기독론과 상응한다고 말한다.30) 몰트만의 메시아적, 기독론적 교회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교회는 역사 안에서 살아간다. 역사는 곧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부활에 의해 서 기초되며, 그 미래는 포괄적인 자유의 나라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살아있는 회상 이 교회의 희망을 이 나라로 향하게 하고, 이 나라에 대한 살아 있는 희망은 그리 스도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회상으로 소급한다.31)

 

몰트만은 또한 성령론적 교회론을 전개하였다. 몰트만에게 성령은 예수의 역사와 하나님 나라의 도래 사이에서 종말론적 미래를 중재하고,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지향하는 새 창조의 영이다. 그는 성령의 창조물로서의 교회를 은사공동체로 이해하면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신자들은 세상을 위한 봉사에 나서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특별히 해방과 생태 운동에 참여하는 예언자적 선포가 성령의 은사라고 보았다.32) 그런 의미에서 몰트만은 자신의 교회론을 카리스마적 교회론으로 부른다. 종말론적 교회론은 교회가 종말론적 지평을 갖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계 참여의 역사에 동참해야 한다는 입장하였다. 그는 실제적인 핵심은 교회 자체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다. 교회 자체의 영광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아들을 통한 아버지의 영광이 교회의 목적이라고 말한다.33)

 

5. 한국교회의 공적 사명과 역할

 

이제 본고의 목적이 되는 한국사회에 요청되는 교회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앞부분에 제시한 것처럼 한국사회는 교회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선을 넘어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성서의 교회론과 신학자들의 교회론을 바탕으로 한국교회의 방향을 찾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본래의 사명과 함께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계획을 드러내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방향을 보여주는 존 웨슬리의 교회론과 공공신학의 교회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존 웨슬리의 교회론

감리교회의 목사로서 웨슬리의 신학과 사역은 현대 사회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고 믿는다. 산업혁명기의 영국사회는 오늘의 한국사회와 유사하다. 급속한 산업화의 결과 엄청난 부를 축적한 계층과 그렇지 못한 이들의 간극이 크게 벌어졌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이들은 도덕적, 신앙적 일탈을 범하기 일쑤였다. 그러한 사회 환경 속에서 웨슬리는 개인적 회심을 통하여 성화의 개념을 성립하였고, 교회의 갱신과 세상을 향한 교회의 사명을 발견하였다. 영국교회의 신조에 따라 교회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신앙인들의34) 모임이라고 믿었고, 그와 함께 신자들의 친교와 성화의 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웨슬리는 교회를 참된 신앙공동체로 정의하면서, 몇 가지 구체적인 특성을 제시하였다. 첫 번째 특성은 성화의 공동체이다. 웨슬리의 성화 개념은 두 가지 차원을 갖는다.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거룩함을 뜻하는 성결과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섬기는 사랑이다.”35) 두 번째 특성은 나누어주는 공동체이다. 이는 성화의 핵심인 사랑의 실천이다. 웨슬리 자신이 개인의 생활비를 제외한 모든 것을 나누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감리교회의 사역은 선교와 함께 구제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돌봄을 특징으로 하였다. 세 번째는, 성도의 교제의 장이다. 웨슬리는 교회가 믿는 사람들의 교제라고 보았고, 속회와 신도회, 밴드 등의 다양한 소그룹을 통하여 교제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네 번째 특징은 하나의 공동체이다. 웨슬리는 모든 교회는 하나의 공동체라고 확신하였다. 그는 분열이 교회 안에 있는 이들의 영혼을 파괴하고 교회 밖에 있는 이들에게 고통을 준다고 보았다. 다섯 번째는 사회개혁 공동체이다. 웨슬리는 성화의 개념을 개인적 차원에 제한하지 않고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하였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기금을 만들고, 대여금고를 설립하여 어려운 이들에게 무이자 대출을 실시하였다. 또한 할 수 있는 한 다 주라는 경제원칙을 제시하면서 과부와 노인, 집 없는 이들을 위한 쉼터를 설립하였다. 정기적인 교도소 방문과 킹스우드의 광부 자녀들을 위한 학교 설립도 교회의 사회적 성화를 위한 사역이었다. 감리교회의 사회적 책임은 구제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노예제도 폐지에 앞장섰고, 의회에서 반노예법안을 통과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여성들의 권리 보호에 기여하였고, 교회 안에서 여성 설교자들을 세웠다.

웨슬리는 교회 자체의 행복과 구원을 추구하지 않았고, 개인의 영혼과 함께 사랑으로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였다. 김영선 교수는 웨슬리의 교회론을 성화 중심의 교회론, 성례를 중시하는 교회론, 교회일치를 주장하는 교회론, 그리고 사회개혁과 사회성결을 추구하는 교회론으로 정리하였다.36) 오늘의 한국사회와 한국교회 안에서 감리교회의 본래 특성을 회복하고 발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2) 공적신학과 공적 교회론

오늘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성서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얼마나 실천하며 살고 있을까?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상징인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함께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하셨다. 사랑에 대한 해석이 다양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만 사랑하라고 부름받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웃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정통주의 신학은 구제와 봉사를 말할 것이다.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과 같은 정치신학과 행동신학은 구조적 변혁에 참여하는 것을 지지할 것이다. 이 장에서는 한국교회에서 확장되고 있는 공공신학의 내용을 통하여 교회의 공공성과 공적 책임을 살피고자 한다. 세상의 신뢰를 잃어가는 한국교회의 신앙실천에 새로운 방향과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공공신학의 정의가 학자들마다 다르지만 대략적으로 정의하면, “공적 영역에 있어서의 교회의 위치를 논하고, 교회의 사회적 형태에 대하여 관심하며, 사회에서의 교회의 역할에 대하여 관심하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37) 대표적 공공신학자 스택하우스는 공공신학을 정치신학과 구별하면서, 정치신학은 사회에 대한 정치적 관점에 관심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공공신학은 정치에 대한 사회학적 이론에 더욱 관심한다고 주장한다.38) 스택하우스는 공공신학이란 공적인 논쟁들이나 문화, 사회, 과학기술, 경제, 정치에 관한 문제들을 다루는 신학의 한 종류이며, 도한 비기독교적 전통들이나 사회과학, 역사과학들과 더불어 비판적인 대화를 하고자 하는 신학의 한 종류라고 말한다.39) 윤철호 교수는 공적(공공)신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공적신학은 성서가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복음에 기초하여 교회와 신학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신학이다.”40) 브라이텐버그는 공적신학은 기독교의 신앙과 실천이 공적 삶과 공공선과 어떻게 관계를 갖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를 설득하여 행동하도록 할 것인지에 관심을 갖는다고 정의하였다.41) 이러한 정의를 종합하면, 공공신학은 하나님의 주권을 세상 모든 공적 영역으로 확장하고, 그리스도인들이 구체적으로 행동하도록 촉구하는 신학이라 할 수 있다.

이 발표는 공공신학 자체를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에서 공적인 위상을 교회 안팎에서 발견하고 실천하는 방안을 찾고, 그 열매로 세상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공공신학의 논의들을 통하여 한국교회가 자신의 공공성과 공적 책임을 인식하고 사회적 책임을 감당할 때, 교회의 본연의 사명인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 구현이 실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손규태 교수는 교회의 공적 의미를 두 가지 차원으로 설명하는데, 세계 개방성과 사회적 공공성이다.42) 그는 세계 개방성은 종교단체로서의 교회가 수도원과 같은 폐쇄적 은둔자 집단이 아니라 자기가 처한 지역에서 자기를 개방하고 지역민들의 삶에 동참하는 것이고, 공공성은 교회가 사적 조직이나 단체가 아니라 공적 집단으로서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책임성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국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상실하게 된 원인도 이러한 공적 의미를 잃어버린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윤철호 교수는 한국교회가 성장 동력을 잃어버리고 급속한 신자 감소를 맞게 된 원인들을 제시하는데 소제목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43) 1) 교회의 세속화. 2) 영적 능력의 약화와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비전 상실. 3) 교회의 그리스도인의 부도덕성. 4) 공동체 의식의 약화와 분열. 5) 신학적 미성숙. 6) 목회전략의 부재와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의 위기. 같은 책에서 윤교수는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과 극복 방안을 말하고 있다. 1) 물질적 풍요에 따른 교회성장의 정체와 교회갱신의 과제. 2) 첨단과학기술 문명의 도전과 교회 지도자의 목회역량. 3) 사이비 종교집단의 발흥과 미신적 신앙, 그리고 사회적 섬김으로의 전환. 4) 대형교회 지양, 교회와 사회의 민주화 지향. 5) 통일한국을 향한 노력: 남북교회의 교류와 협력. 6) 분열된 한국교회의 연합운동. 7) 생태계 파괴의 가속화와 그린목회.44) 먼저 소개한 한국교회의 성장 동력 상실과 나중에 소개한 도전들은 교회 안팎의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특별히 지난 3년간 전 세계가 함께 겪은 코로나 팬데믹의 공포는 교회에 또 다른 과제를 안겨주었다. 사회적 위기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실천이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했다. 비대면, 비접촉 시대를 앞당기고, 전통적인 사역의 방식과 내용을 돌아보게 했다. 사회적 불평등과 불공정도 교회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교회 자체가 이념과 지역과 신학으로 분열하여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공신학이 과제로 삼은 일곱 가지 테제가 오늘 한국교회의 나아갈 방향이 될 수 있다.

 

1) 사회의 다른 영역과 대화를 통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소통하 고 변증한다.

2) 이론만이 아닌 실천을 통하여 사회적 책임을 수행한다.

3) 사회적 소통과 변증을 통하여 오늘의 특수한 상황들을 향해 말하고 사회의 공공선

을 실현하기 위한 변혁적 실천에 있어 성서와 사도적 신앙 전통에 대한 충실성을 유

지한다.

4) 모든 영역의 사회적 현실을 신학의 주제와 대상으로 삼는다.

5) 자유민주주의적인 시민사회를 전제하며 투쟁보다 대화, 혁명보다 개혁을 추구한

. 그러나 시민사회가 형성되지 못한 국가나 사회의 독재적, 억압적 상황에서는 정

치신학이나 해방신학의 투쟁적, 혁명적 방법이 필요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6) 세계화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평가하고 역기능에 대하여 비판적 입장을 가질 필요

가 있다.

7) 하나의 보편적인 신학이 아니라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상황에 적합한 다양한 형태

의 공공신학을 논의한다.45)

 

공공신학은 형성중인 신학이라 할 수 있다. 교회의 공공성과 공적 책임을 중심 주제로 다룬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교회론이다. 공공신학의 담론들은 한국교회의 공적인 신앙 실천에 실천적인 안내자가 될 수 있다. 현대사회는 날이 갈수록 복잡한 이해관계가 형성되고, 다양한 문화와 집단이 출현할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되, 세상이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는 방식과 내용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세상이 먼저 교회를 향하여 공적인 모습을 보이고, 사회 구성원의 책임을 감당하라고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6. 나가는 말


한국교회는 교회의 두 가지 사명,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 구현”, 혹은 영혼 구원과 사회 구원”, 웨슬리의 표현을 빌리면, “개인적 성화와 사회적 성화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잃어버린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공적 영역에서 보다 많은 예언자적인 목소리와 행동을 보여야 할 것이다. 성서의 가르침과 교회의 이천 년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참된 교회의 사명이 성령의 능력 안에서 복음을 전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오늘의 문제와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배우고 아는 것을 행하지 못한 것이다. 한국교회 목회자가 교인들 모두 진지하게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성령의 현존과 능력 안에 있는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하고 연합한 거룩한 백성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예배공동체로 머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웃과 세상을 섬기고,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실현해가야 한다. 물질만능주의와 과학지상주의로 포장된 무신론의 도전 앞에서 신실한 신앙인으로 훈련하는 동시에 사회적 구원을 선포하고 이루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 편에 서야 한다. 그것이 오늘의 한국교회가 공공성을 회복하고 선교의 과제를 수행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다.

마태복음 516절의 말씀을 결론으로 삼는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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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승현 기자.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4826. “거룩한 범죄자들1”, <뉴스앤조이> 2022.11.15, 2023.2.21 접속.

2) 이원규, 한국교회 어디로 가고 있는가?(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0), 69-119 참조.

3) 손규태, 한국 개신교의 신학적-교회적 실존(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4), 42-45. 손교수는 성직자들의 도덕적 일탈을 설명하면서, 성공한 일부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교회 사유화, 세습, 성적 일탈행위를 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 무자격한 자들에 대한 안수와 개신교의 제도적인 약점인 자유방임주의적 목회 현실을 말하고 있다.

4) 기독교윤리실천운동, 2023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 자료집, (서울: 지앤컴리서치, 2023). 자세한 사항은 자료집을 참고하라.

5) 한국신약학회 편, 신약성서의 교회론(서울: 한들출판사, 2000). 1부에 실린 김지철, “바울의 교회 이해에 대한 성령론적인 반성을 참고하라.

6) 위의 글, 17-18.

7) 은준관, 신학적 교회론(서울: 한들출판사, 2006), 154-163.

8) 위의 책, 157.

9) 윤철호, 한국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공적 신학(서울: 새물결플러스, 2019), 96-101.

10) 위의 책, 101.

11) 김균진, “교회론의 성서적ㆍ신학적 기초, 한국조직신학회 엮음, 교회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9), 27.

12) 정홍렬, “아우구스티누스의 교회론”, 한국조직신학회 엮음, 교회론, 50-51.

13) 위의 책, 55.

14) 위의 책, 55.

15) 위의 책, 62.

16) 황재범, “토마스 아퀴나스의 교회론”, 한국조직신학회 엮음, 교회론, 69.

17) 은준관, 신학적 교회론, 210-212.

18) 위의 책, 213.

19) 황재범, “토마스 아퀴나스의 교회론”, 89.

20) 은준관, 신학적 교회론, 288.

21) 이형기, 하나님 나라와 공적 신학, (서울: 한국한술정보, 2009), 39-40.

22) 최종호, 칼 바르트, 하나님 말씀의 신학(서울: 한들출판사, 2010), 46.

23) 이형기, 하나님 나라와 공적 신학, 41.

24) 은준관, 신학적 교회론, 327.

25) 위의 책, 333.

26) 위르겐 몰트만, Theology of Hope, (NY: Harper & Row, 1975), 42.

27) 신옥수, “위르겐 몰트만의 교회론”, 한국조직신학회 엮음, 교회론, 308. 그런 의미에서 그는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를 세계 여러 지역에서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에게 헌정한다고 밝혔다.

28) 위의 책, 310.

29) 위르겐 몰트만, The Church in the Power of the Spirit, (London: SCM Press, 2000), 65.

30) 위의 책, 66.

31) 위의 책, 197.

32) 위르겐 몰트만, The Spirit of Life,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2), 186.

33) 위르겐 몰트만, The Church in the Power of the Spirit, 11.

34) 위의 책, 157.

35) 김영선, “존 웨슬리의 교회론”, 한국조직신학회 엮음, 교회론, 155.

36) 위의 책, 167.

37) 임성빈, 21세기 한국사회와 공공신학,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17), 29.

38) 위의 책, 30.

39) 위의 책, 63.

40) 윤철호, 한국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공적 신학, 331.

41) 위의 책, 331.

42) 손규태, 한국 개신교의 신학적-교회적 실존, 63.

43) 윤철호, 한국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공적 신학, 133-152.

44) 위의 책, 57-82.

45) 위의 책, 35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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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22.11.28 By새물결 Views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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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서울연회 감독선거에 대한 새물결의 견해

    서울연회 감독선거에 대한 새물결의 견해 2022년 감리회 연회 감독선거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실하고 유능한 지도력이 요구되기에 입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구체적이고 세밀하...
    Date2022.09.21 By새물결 Views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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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제13대 충북연회 감독선거 후보자에게 바랍니다.

    제13대 충북연회 감독선거 후보자에게 바랍니다. 무엇보다 선교와 교육 등 여러 방면에서 우리 연회를 보다 낫게 만들기 위하여 애쓰는 기호1번 백종준, 기호2번 박정민 후보자에게 격려의 박수...
    Date2022.09.03 By새물결 Views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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