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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나야 하늘나라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거듭남의 표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천국을 볼 수 있는 것.

거듭남과 천국과 봄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거듭나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믿는 자들은 다 거듭났는가?

 

거듭남이라는 사건은 우리 신앙의 과정에 있는 세례와 믿음의 수용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일차적으로 믿음의 수용을 거듭나는 사건이라 생각했고, 세례로 그것을 상징했다. 

왜냐하면 거듭난다는 것은 새사람이 된다는 것이고 그것의 바탕은 믿음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믿음을 가졌다는 교인들이 거듭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목사들 까지, 지도자라고 자칭하는 사람들마저도 거듭나지 못한 것 같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들을 그들이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관심 갖는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믿음이라는 새로운 과정을 받아들일 때 일어나는 것 보다는 믿음을 받아들인 이후의 과정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천국은 어떻게 해야 볼 수 있으며, 그때 보여 지는 내용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 일게다.

그런데 그분의 통치하지 않는 곳이 어디이며 그분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어디인가?

그분의 살아있음을 믿고 그분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곳, 그곳이 하나님 나라라면 이 세상은 그 어디나 다 하늘나라다!

 

그러면 우리는 이것을 일상 속에서 어떻게 알아차리며 살아가는가?

그것은 관상적인 삶, 그분의 현존을 깨닫고 그 현존 안에 머무는 삶일 게다.

그분이 내가 있는 이곳에 지금 계심을 알아차리고,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며, 그런 삶이 이뤄질 때 내가 있는 ‘지금 여기’가 바로 하나님 나라임을 볼 수 있다!

 

거듭남은 일회적 사건인가?

아니면 계속해서 일어나야 하는 지속적인 사건인가?

과문한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만일에 영혼의 ‘어두운 밤’이 우리가 거쳐야 할 일회적인 과정이 아니라면 거듭남도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할게다.

거듭남이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면 그 첫 번째 사건은 믿음의 수용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 거듭남은 계속적으로 일어나야 하는가?

물론 한번으로 마쳐지는 특별한 이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커다란 은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잊고 산다.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계심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그분을 잃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분을 잊고 또한 잃어 버렸다면 우리는 일상의 삶에서 그분을 다시 찾아야 하고, 되새겨야 하고, 그분과 다시 이어져야 할게다.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 계심을 알아차리고, 그분이 각 사람 사이에 무언가 움직이고 계시며, 다른 어디에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음을 볼 수 있을 때,  바로 이때가 거듭날 때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볼수 있으며 이미 그의 나라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변화를 거부하는 걸까?

우리가 갖고 있는 현재의 습관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의 껍데기 자아가 우리의 변화를 가로 막고 있다.

왜?

그 변화는 무엇으로의 변화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막고 있는가?

 

우리의 궁극적 변화는 본래적인 나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창조의 목적대로 존재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으로 부터 와서 하나님께 가는 길이라면, 우리가 가는 길도 하나님과 함께 그분과 하나 되어 그분이 되어 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가로 막았던 걸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