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회목회자모임 '새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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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제2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사도행전 | 행 4:32-37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응송 | 시 133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서신 | 요일 1:1-10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복음 | 요 20:19-31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묵상 | Meditatio

①요 20:27을 묵상하십시오.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하신 후 당부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②행 4:32-35을 묵상하십시오. 성령의 은총을 체험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구체적으로 삶에서 어떤 변화를 보였습니까?
③요일 1:1-3을 묵상하십시오. 사도 요한이 '들은 바', '눈으로 본 바',
'손으로 만진 바'를 사람들에게 전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묵상 나눔



부활 목격담과 신앙고백


오늘 부활절 두 번째 주일의 복음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는 제자들의 목격담 혹은 경험담의 종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내러티브(narrative)들은 때로는 개인적인, 때로는 공동체적인 목격담과 증언 혹은 고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를테면 "내가 주를 보았다"(요 20:18)고 한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이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요 20:25)라고 한 제자들의 증언, 그리고 예수님께서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8) 하셨을 때,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라고 한 도마의 고백 등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증언들이나 고백은 노력해서 나온 것이 아닌 믿음의 자연스러운 결과로서의 증언이고 고백입니다. 이러한 믿음과 증언과 고백이 중요한 이유는 부활에 대한 믿음이 희미해졌을 때 교회가 쇠퇴했고, 신자들은 세속의 유혹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부활에 대한 믿음이 확고할 때 교회는 부흥했고, 그리스도인은 고통과 핍박과 유혹들 앞에서 당당했으며, 세상은 그들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주님의 부활을 믿게 되는 과정들이 각각 다릅니다. 베드로와 무덤에 갔던 '그 다른 제자'는 예수님의 수의를 보고 믿었고(요20:1-10),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기 이름을 부르셨을 때 믿었고(요 20:11-18), 나머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 말씀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을 때 믿었으며(요 20:20), 도마는 예수님께서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만져보라고 하셨을 때 믿었습니다(요 20:28). 그들이 박해와 유혹을 이겨내고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부활을 통해 증명된 영원한 생명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지금 이 성전에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들 가운데 와 계심을 믿음으로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요 20:19) 하며 인사하시는 주님 음성을 여러분의 심장 가득히 채우시고, 우리가 나누는 떡과 포도주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모셔 들여서, '내 안에 주님 계시고, 주님 안에 나 있음'을 온 존재로 체감하며, 우리를 향해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아라"(요 20:22) 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숨결을 여러분의 폐에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의 말씀을 보면 제자들은 이런 실재적 신앙 가운데 있지를 못했습니다. 오히려 요한은 예수님 부활 직후 제자들이 보인 모습들을 매우 불안하게 묘사합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 요 20:19a

안식 후 첫날은 우리 기준으로 주일 저녁인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바로 그 날 저녁입니다. 이때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무서워서 '문들(뒤론 θύρῶν)'을 굳게 닫아걸고 있었다고 요한은 전해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잔인하게 처형당하시는 모습을 보았고, 예수를 처형한 유대인들이 언제 자신들마저 체포하러 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의 그들의 두려움에 한편으로는 공감하면서도, 바로 앞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마리아가 무덤에서 생생하고 애틋한 재회를 가졌고,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달려가 "내가 (부활하신) 주를 보았다"(요 20:18a)며 주님께서 자기에게 일러주신 말씀까지 전한 것(요 20:18b)을 생각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아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빈 무덤에서 마리아와 재회하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두려움 속에 문들을 걸어 잠근 이곳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 요20:19b-20

초기 그리스도교 신앙뿐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이 사건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두 번째 찾아오심이, 이후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요 20:31a),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얻는 것'(요 20:31b)에 믿음의 기초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조직신학자인 폴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는 예수님 부활의 실제성을 신뢰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를,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 두 번째 현현(顯顯)에 대한 원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증언에서 찾습니다. 그에 따르면 예수님의 빈 무덤은 그 자체로도 매우 중요한 부활의 증거가 될 수 있지만, 마리아의 증언과 함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이 두 번째 현현과 결합될 때, 더욱 선명한 부활 증언의 토대가 된다는 것입니다.1) 미국의 신약학자인 크레이그 키너(Craig S. Keener) 역시 예수님의 이 두 번째 현현은 요한의 기독론과 믿음의 동기의 클라이맥스이기 때문에 복음서의 중심적인 클라이맥스가 되고, 인내하는 믿음의 기초를 정의한다고 했습니다.2)

굳게 닫힌 문들을 통과해 제자들에게 오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가지 방법으로 당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먼저 주님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b)라시며 제자들의 두려워하는 마음이 평강을 찾도록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당신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주셨습니다. 이 상처들은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실 때 생긴 상처입니다. 굳게 닫힌 문들을 통과해 들어오신 것은 당신께서 영적 존재임을 보여주신 것이고,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주신 것은 동시에 육적 존재임을 계시하신 것인데,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가지셨던 육체와 부활하실 때 가지신 새 몸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비로소 기쁨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 요 20:21-23

주님은 제자들의 기쁨과 평강을 회복시켜 주실 뿐 아니라 그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의 은총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가해지는 박해도 현재이지만, 보혜사의 도우시는 은총도 역시 현재이기 때문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어주심으로서 박해를 견디며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오셨을 때, 거기에 열두 제자 중 하나인 도마는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제자들이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요 20:25a) 할 때, 그는 딱 잘라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 요 20:25b

이 한 마디 때문에 그는 지난 이천 년간 '의심 많은 도마(Doubting Thomas)'라는 불명예스러운 낙인의 주인공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부분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의심은 신앙생활에 있어 불경하기만 한 것일까요? 오히려 의심 없는 확신, 맹목적인 신앙이 더 위험한 것은 아닐까요? 실제 '회의(懷疑)와 성찰을 통과하지 않은 믿음'이 오히려 자신과 타
인에게 폭력으로 작용한 예는 수없이 많습니다. 오히려 맹목적인 확신보다 회의를 거친 합리적인 의심이 우리를 더 성숙한 인식의 세계로 인도할 수도 있겠습니다. 데카르트를 포함한 근대 철학자들은 '내가 지각하는 대상은 실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관념(觀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 대상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존재로 찾아내기 위해 모든 존재에 대한 인식을 의심(疑心)하는 것, 그것을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라고 했습니다. 그 방법적 회의의 목적은 절대 의심할 수 없는 인식을 찾는 것입니다.3) 데카르트의 말대로라면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는 도마의 태도가 비난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적어도 그의 의심은 자신이 믿는 대상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진리로 받아들이기 위한 의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올 김용옥 선생은 도마에게 찍힌 '의심 많은 도마'이라는 낙인은 부당한 낙인이라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그는 요 11:16절에서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할 정도로 의리 있는 사나이이고, 요 14:5절에서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라고 말한 것에서 보듯이 진리에 대한 향심이 투철하고 좀 아둔하지만 단도직입적인 성격의 사나이였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김용옥 선생은 "도마의 그런 확고한 입장이 없었더라면 위대한 예수의 메시지는 발출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4)

하지만 지난주에도 언급했듯이 '본다'는 것은 믿음을 일으키게 할 수도 있지만, 믿음을 가로막을 수도 있습니다. 참 믿음은 '시각적으로 보는 것'에서만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감추어진 내면성과 내적 진리를 성찰함'으로 찾아지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감추어진 내면성과 내적 진리를 성찰한다'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 이면(裏面)에 숨겨져 있는 진리에 관심을 두고 깨달아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도마의 태도가 반드시 옳다고 볼 수는 없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도마의 발언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입니다. 이어지는 말씀 보십시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 요 20:26, 27

그래서 도마는 어떻게 했을까요? 자기 손을 대어서 확인했을까요? 요한은 그것을 확인해주지 않습니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신 건 '믿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는 이 말씀에 예수님의 바람이 들어 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하신 말씀은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 요 20:29

사실 이 말씀은 도마 뿐 아니라 거기 있는 제자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씀이고, 동시에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눈으로 보고서야 믿는 믿음'보다는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이 복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되 '올바로 믿고', '참되게 믿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이라고 주님 말씀 하실 때, 그 음성을 심장 가득히 채워 평안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해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아라" 하셨으니 그 숨결을 내 존재에 가득채워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도마처럼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 요 20:28

도마의 이 고백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자 본질이고 요체입니다. 도마의 이 고백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사회 속에서 성찰해 봐야 합니다. 당시 현실 속에서 '나의 주님'이라는 표현은 로마 황제에게만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로마 황제가 최고 권력을 손에 쥐고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던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로마 황제를 '퀴리오스' 즉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당시는 황제가 곧 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도마가 주님을 향해 '퀴리오스' 즉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른 겁니다. 도마는 이순간 진리를 분명히 안 것입니다. 도마가 비로소 '참 믿음'에 도달한 것입니다. 단지 교리적으로 주님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돌아설 회개의 대상'으로서의 주님을 깨달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퀴리오스는 누구일까요? 현대인들은 세속적인 힘 즉 돈을 숭배하는 맘모니즘과 권력숭배라는 우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런 우상숭배를 깨뜨리는 고백이 도마의 심장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입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도마의 이 고백에는 "이제부터 나의 주님은 맘모니즘도 세속권력도 아닌 오로지 주님뿐이십니다"라는 결단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에서 누가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소개해 줍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 행 4:32

누가는 이들을 일컬어 '믿는 무리'라고 부릅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시는 부활하신 주님 음성을 듣고, "성령을 받아라" 하셨을 때 주님의 숨결을 받아들인 제자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을 가진 제자들은 비로소 진정으로 '믿는 무리'가 되었고, 그 믿음이 저들을 한 마음 한 뜻을 가지게 하고, 맘모니즘의 우상에서 해방되어 모든 물건을 통용하는 신앙 공동체를 일구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런 삶을 오늘 서신서에서 사도 요한은 요한 공동체만의 표현으로 소개해 줍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 요일 1:3

누가도 요한도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자신들이 경험한 목격담을 가진 제자들은 이렇게 각각 자신들만의 독특한 표현으로 부활공동체가 살아가는 모습을 소개합니다. 우리도 이들처럼 부활신앙을 확고히 해서 '믿는 무리'로서 한마음과 한 뜻을 이루고, 사도들이 보고 들려준 경험담과 전해 준 말씀으로 나를 무장하고, 성령의 숨결을 통해 성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소통하며, 매 순간 부활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Exercitatio
①나의 신앙고백은 막연하거나 교리적이지 않은가?
③신앙고백과 삶의 변화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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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신준호․안희철 옮김 「판넨베르크 조직신학 Ⅱ」 (새물결 플러스2018) 608-609쪽
2) 크레이그 S. 키너/이옥용 옮김 「키너 요한복음 Ⅲ」(기독교문서선교회 2018) 3086쪽
3) 윤선구 「데카르트-성찰」(서울대학교 철학사상 연구소 2004) 36쪽
4) 도올 김용옥 「요한복음 강해」(통나무 2007) 468-4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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