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회목회자모임 '새물결'

 
 

^top^

로그인

조회 수 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부활절 제3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읽기 | Lectio

 

사도행전 | 3:12-19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 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 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 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 한 줄 아노라

18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 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응송 | 4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서신 | 요일 3:1-7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 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 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5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복음 | 24:36-48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 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 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 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 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 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묵상 | Meditatio

 

24:39-40, 44-47절 묵상하십시오. 두려움과 의심에 빠져있는 제자들에게 주님께 내리신 처방은 무엇과 무엇입니까?

 

3:12-15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목격하고, 부활 신앙으로 무장한 베드로는 어떤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까?

 

요일 3:3을 묵상하십시오. 주를 향하여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마다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한다는 것입니까?

 

기 도 | Oratio

묵상 나눔



부활 사건에서 부활 신앙으로

 

새들백교회에서 사역했고, 현재는 휴스턴 침례대학교에서 기독교사상을 가르치는 리 스트로벨(Lee Strobel) 목사의 본래 직업은 대학에서 법과 저널리즘을 공부한 후 14년간 언론계에 몸담은 노련한 저널리스트였습니다. 한때 교회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 찬 무신론자였던 그는, 스스로에 대해 철저한 무신론자에서 집요한 영적탐구자로, 냉소적 회의론자에서 열정적 복음주의자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고 소개합니다. 그가 쓴 '예수는 역사다'라는 책에 보면, '역사적 예수'의 권위자인 게리 하버마스(Gary Habermas) 교수와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그는 마치 검사가 취조할 때나 쓸 법한 무뚝뚝한 말투로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하버마스 교수가 놀라운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에 대한 묘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무덤 속에 들어가서 예수의 시체에 생기가 도는 모습, 일어나는 모습, 세마포를 푼 후에 그것을 접는 모습, 돌을 치우고 무덤을 떠나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스트로벨이 다시 묻습니다.

 

그렇다면 부활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하고자 하는 교수님의 입장이 불리해지지 않습니까?

 

하버마스 교수가 대답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은 전적으로 원인과 결과에 관한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공룡을 연구할 때는 살아있는 공룡이 아니라 공룡의 화석을 통해 연구하듯이, 저도 같은 방식으로 부활에 대한 증거들을 연구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었는가? 둘째, 예수님은 후에 나타나셨는가? 이 두 가지를 입증할 수 있다면, 예수님이 정말로 부활하셨다는 것이 증명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이라면 사람들 앞에 나타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러면서 그는 비평가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증거로서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내용이 담긴 고전 9:1절과 15:8절을 예로 들어주었다고 합니다. 영화감독이자 목사인 김상철 목사도 자신의 책 '부활'에서 게리 하버마스 교수의 말을 인용해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고대 자료는 45개에 달하며, 중 비그리스도인의 자료만 17개라고 소개합니다. 부처에 관한 기록은 불경에만, 공자의 생애는 '공자세가'에만, 무함마드의 생애는 이슬람 문서에만 등장하며, 고대 종교 지도자 중 예수만큼 다양하고 신뢰성 있는 역사적 기록을 가진 인물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유주의자나 보수주의자 할 것 없이 예수님의 부활을 연구하는 학자들 모두가 동의하는 역사적 사실 4가지를 소개합니다.

 

첫째,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어 무덤에 묻혔다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의 무덤은 빈 무덤으로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셋째, 개인과 그룹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본 것입니다.

넷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삶이 변화된 것입니다.

 

이 중에서 둘째, 예수의 무덤이 빈 무덤으로 발견된 것은 부활의 가장 강력한 증거인데, 이를 지지하는 증거들로는 각각 다른 전승을 가진 사복음서 모두가 예수의 무덤이 비어있었음을 증언하는 점, 바울 이전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경(Creed 고전 15:3-8)이 예수의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사실을 지지하고 있으며, 복음서가 빈 무덤의 최초 증인으로 여인들을 내세운 점, 1세기 당시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논쟁(28:11-15)잘 살펴보면, 양측 모두 예수님 무덤의 위치를 분명히 알고 있었고, 무덤이 비어있었음을 시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시 유대 법정은 여인의 증언에 법적 효력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 부활의 목격자로 인정을 받으려면 남자들을 내세우는 것이 훨씬 유리했을 것인데, 그럼에도 여인을 부활의 첫 목격자로 기록한 것은 복음서 저자들이 부활 사건을 역사적 사실 그대로 기록했음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 개인과 그룹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본 기록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20:10-18, 28:8-10)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24:13-32) 열한 제자를 포함한 여러 사람(24:33-49) 도마를 제외한 열 사도와 다른 사람들(20:19-23) 도마와 다른 사도들(20:26-30) 제자들(28:16-20) 승천하시기 전 감람산에서의 사도들(24:50-52, 1:4-9) 등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는 이 중에서 엠마오 길에서 주님을 만난 두 제자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열한 제자를 포함한 여러 사람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실을 증언할 때,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 24:36

 

지난주 요한이 전해준 말씀에서도 보았듯이 지금 제자들은 엄습하는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스승의 처형을 현장에서 목격한 제자들만큼 비참한 패배를 맛본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의 처참함이 제자들을 억누를수록 예수님은 더 선명하게 부활을 각인시키십니다. 주님은 먼저 엠마오로 낙향하던 두 제자에게 가셔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성경에 기록된 당신에 관한 예언을 자세히 설명해주십니다(24:27). 그때 두 제자는 비로소 자기들이 목격한 예수의 처형이 옛 구약의 이야기와 맞아떨어진다고 깨닫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뜨거워집니다(24:32), 그 후에 주님은 언젠가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보여주신 그대로 빵을 떼어서 나누어주는 행동을 보여주십니다(24:30, 31), 그러자 두 제자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그때 비로소 낙심했던 마음에 다시 살아갈 힘이 되살아났고, 그래서 낙향하던 발길을 돌려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할 때' 정말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뒤덮은 두려움을 평안으로 바꾸어주시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십니다. 그러나 여전히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 24:37, 38

 

누가는 제자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를 부활하신 예수님을 귀신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24:37).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 두려움의 원인을 의심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24:38). 주님은 제자들의 의심을 없애시기 위해 먼저 '말씀'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4:36) 주님의 이 말씀은 빈 무덤에서 여자들이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아 근심할 때,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했던 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24:5, 6a)라며 그들이 했던 말이 이랬습니다.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24:6b). 주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 하신 말씀이란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18:32, 33) 하셨던 그 말씀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의심과 두려움의 원인은 모두 말씀을 기억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먼저 '말씀'으로 제자들을 위로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 보십시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 24:39

 

예수님의 손과 발은 놀랍게도 완벽하게 치유된 상태였습니다. 그 완전한 몸이 바로 우리가 부활 후에 받을 새 몸입니다. 누가는 이때 제자들이 너무 기쁘므로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겼다고(24:41a) 당시 분위기를 전해줍니다. 그러고 나서 주님은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24:41b) 물으시고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자 제자들 앞에서 잡수셨습니다(24:42, 43). 이때 제자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이렇게 손과 발을 보여주시고, 음식을 함께 나눈 기억을 재현시켜주신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보다 현실적으로 체감시켜주시려는 주님의 애쓰심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훗날 누가는 헬레니즘 세계의 신앙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여러 몸짓을 보여줌으로서, 예수님의 부활이 당시 그리스 철학자들이 주장하던 대로 죽은 후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영혼만 부활한 것이 아닌 영혼과 육체의 완전한 부활이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 24:44-45

 

이 말씀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이라는 것은 율법서와 선지서와 성문서를 총괄해서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마치 빈 무덤에서 여인들에게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랬듯이, 또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주님은 또 제자들에게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이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 말씀의 성취였음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의 설명에 따르면 주님께서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24:45)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고백을 떠올려 보십시오. "주님께서 길에서 성경을 풀어 주실 때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24:32)성경을 깨닫는 데 있어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를 이 말씀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증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그리스어로 '카르디아 καρδία)'라고 하는데, 그리스 사람들도 이 '마음'을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포함한 영적진리를 수용하는 가장 중요한 중심기관으로 여겼습니다. 주님은 바로 이 '마음'을 뜨겁게 해주시고,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우리 '마음'에도 항상 성경이 깨달아지고 그래서 항상 '마음'이 뜨거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삶의 가치와 목표를 새로이 갖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서의 말씀도, 주님께서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신 후에 그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 24:46-48

 

예수님의 증인으로 산다는 것은 박해와 죽음에 맞서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지금에야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아무나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것은 십자가의 희생을 딛고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손과 발의 상처는 고난과 죽음을 통해 받으신 영광의 낙인이었습니다. 훗날 사도 바울은 자신도 몸에 이 낙인(烙印)을 지니고 있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6:17).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의 진실 앞에 서게 됩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에게 있어서도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구원의 여정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이라는 진실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할 뿐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름으로서 또한 부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멜 깁슨 감독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the Christ)'는 느낌으로 말하라면 감동적이기보다는 끔찍한 영화였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의도는 죽음의 처참함을 극대화함으로서 부활사건을 더욱 강렬하게 부각시키려 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 사도는 롬 6:5에서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라고 말씀하는가 하면, 죽음의 처참함과 폭력성을 경험하는 깊은 지점에서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이 고백은 예수님이 죽음을 통과하고 부활하심으로서 죽음을 영원히 끝장내셨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부활은 하나님께서 죽음 앞에 선 인류에게 주신 사랑의 절정입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난 후에야 비로소 십자가에서 부활로 이어지는 예수님의 여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들 안에 완성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절정의 은혜를 체험한 성도만이 십자가를 통과해 부활로 이어지는 복음적 삶의 가치와 목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왜 사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고통도이겨낼 수 있다'고 니체는 말했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만이 어떤 극한의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친히 제자들에게 오셔서 사를 건네시고 손과 발을 만져보게 하십니다. 당신의 부활이 영혼만의 미완(未完)의 부활이 아닌, 영혼과 육체의 완벽한 부활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이렇게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마음을 열어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당신의 부활하신 몸을 보여주시는 것은 '부활사건''부활신앙'으로이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후로 제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사도행전의 말씀에서 이후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 3:13-15

 

예수님을 배신하고 도망갔던 베드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입니다. 이후에도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이 두려워 문들까지 닫아걸고 숨어 살던 베드로입니다. 그런 베드로가 유대인들 앞에 당당히 나서서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24:48). 그런데 지금 베드로가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고 합니다. 겁한 겁쟁이였던 베드로가, 그래서 증인이 될 수 없었던 베드로가, 당당하게 부활의 증인임을 자처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3:19)며 당당한 어조로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부활이 체험되고, 마음에 성경이 깨달아지니 삶의 가치와 의미를 분명히 알게 된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복음의 여정에 드리운 절망과 희망의 변곡점이었습니다. 인간의 희망은 예수의 죽음에서 곤두박질치다가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새로운 현실과 만나면서, 하나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죽이신' 복음의 절정에서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래서 부활사건은 반드시 우리의 부활신앙으로 이어져야만 합니다. 주님의 부활사건을 소문으로만 들으면 안 됩니다. 말씀으로 깨달아져서 나의 부활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날부터 성경이 깨달아지기 시작하고 예수님의 부활에서 나의 부활을 체감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는 더 이상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게 되고, 목숨을 위해 비겁한 안전을 구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요한은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 요일 3:2, 3

 

사도 요한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이란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면서 주님께만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오셔서 당신 참모습을 보이시면, 우리도 예수님과 같을 줄을 알기에 예수님의 깨끗하심처럼 우리도 스스로를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소망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었다면 제자들은 그것을 알았을 것이고, 그 거짓을 위해 죽음의 구렁에 자신을 던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부활 없는 안정보다 부활과 함께 하는 죽음을 택했습니다. 한 명도 아니고 열두 명의 제자가 하나같이 부활과 함께하는 죽음을 선택한 것은 부활을 통해 주님과 같아지는 것 외에는 걷고 싶은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실천 | Exercitatio

 

소문으로 듣듯이 막연하게 부활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말씀과 성찬을 통해 주님의 부활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는가?


부활절 제3주-부활 사건에서 부활 신앙으로.pdf

?

  1. 부활절 제7주 | 승천주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부활절 제7주 | 승천주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 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성령께서 오시도록 청합니다. 침묵기도는 하나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
    Date2024.05.08 Views0
    Read More
  2. 부활절 제6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Date2024.05.04 Views0
    Read More
  3. 부활절 제6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부활절 제6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 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성령께서 오시도록 청합니다. 침묵기도는 하나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 의탁하는 ...
    Date2024.04.29 Views0
    Read More
  4. 부활절 제5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부활절 제5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사도행전 | 행 8:26-40 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Date2024.04.27 Views0
    Read More
  5. 부활절 제4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부활절 제4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 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성령께서 오시도록 청합니다. 침묵기도는 하나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 의탁하는 ...
    Date2024.04.27 Views0
    Read More
  6. 부활절 제3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부활절 제3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사도행전 | 행 3:12-19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
    Date2024.04.13 Views0
    Read More
  7. 부활절 제3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부활절 제3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 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성령께서 오시도록 청합니다. 침묵기도는 하나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 의탁하는 ...
    Date2024.04.08 Views0
    Read More
  8. 부활절 제2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부활절 제2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사도행전 | 행 4:32-37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
    Date2024.04.08 Views0
    Read More
  9. 부활주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부활주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사도행전 | 행 10:34-43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
    Date2024.03.30 Views0
    Read More
  10. 부활주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부활주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 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떼제 찬양 ☞10분 ■ 읽기 | Lectio ☞20분 사도행전 | 행 10:34-43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
    Date2024.03.30 Views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3 Next
/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