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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제5(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읽기 | Lectio

 

구약 | 31:31-34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 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 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 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응송 | 51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 사 나를 붙드소서

 

서신 | 5:5-10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 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 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 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 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 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복음 | 12:20-33

 

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 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 기시리라

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 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 에 왔나이다

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 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 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29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묵상 | meditatio

 

31:33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집과 맺을 새 언약 을 어디에 두고 어디에 기록하겠다고 하십니까?

 

12:24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온 헬라 사람들 앞 에서 구원의 방법을 어떻게 설명하십니까?

 

5:7-8을 묵상하십시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께서 아 버지이신 하나님께 보인 두 가지 태도는 무엇입니까?

 

기 도 | Oratio | 5-10

묵상 나눔



새 언약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어느덧 사순절 다섯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어쩌면 오늘 예배는 성큼 다가온 십자가의 수난을 맞이하는 마음과 십자가 너머에 준비된 부활을 맞이하는 마음이, 한편 무거우면서도 그러나 기대와 설렘이 교차하는 예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십자가에는 우리가 성찰해내야 할 신앙의 테마들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자기를 포기하고 성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라는 권고, 그 권고를 대하는 각자의 태도에 따라 세상에서 드러나게 될 빛과 어둠의 삶,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신 사랑의 선물로서의 언약 등등이 바로 십자가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묵상과 성찰의 테마들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한편으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와 함께 고난을 감내할 것을 권고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십자가 너머 부활이 가져다 줄 '파스카(Pascha)의 신비' '죽음 너머에 마련된 부활의 기쁨'에로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특별히 오늘 성서일과는 십자가를 통과해 부활로 이어지는 이 복음의 정수를 '새 언약'이라는 테마 안에서 성찰하도록 우리에게 묵상자료를 제공해 줍니다.

 

'언약(言約, covenant)'이란 단어는 구약에서는 히브리어 '베리트(ברית)', 신약에서는 헬라어 '디아데케(διαθκη)'로 언급됩니다. '협약(alliance)' 혹은 '약속(agreement)'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성경에서 '언약(covenant)'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종교적 승인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서신학이나 조직신학자들은 대개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인 구약을 '옛 언약'의 말씀으로 보고, 예수님께서 오신 후인 신약을 '새 언약'의 말씀으로 봅니다. 구약과 신약이라는 두 개의 경전은 분리되어 있지만 동시에 서로 맞물려 있는 까닭에 널리 알려진 라틴어 표현이 있습니다.

 

옛 언약에 새 언약이 숨어 있으며, 새 언약을 통해 옛 언약의 의미가 드러난다.

 

오늘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31:31) 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미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언약을 체결하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다시 새 언약을 예언하게 하시는 이유는 옛 언약이 깨어졌기 때문입니다(31:32), 그래서 하나님은 새 언약을 마련하셨는데, 새 언약의 특징은 돌이 아닌 마음에 새겨주시는 것이었습니다(31:33).

 

복음서의 말씀은 예레미야의 예언이 있고난 후 60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실제로 그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온 헬라인들 앞에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12:23)라시며, 한 알의 밀의 죽음에서 당신의 죽음을 보여주십니다(12:24). 즉 당신의 순종과 희생으로 완성되는 새 언약의 성취를 보여주시는 것인데,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12:27)라는 고백에서 주님의 견고한 의지를 보게 됩니다.

 

서신서에서 히브리서 저자 역시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새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되었음을 선언합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5:7) 라는 말씀을 통해서는, 주님의 죽으심으로 새 언약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결단이 있었음을 보여주면서도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 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5:8, 9 )라는 말씀을 통해서는 그럼에도 자기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예레미야가 예언한 그대로 이스라엘을 위한 새 언약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합니다. 구약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 31:31

 

예레미야서처럼 선지자 개인의 감정이 섬세하게 드러나는 예언서도 드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시기에 활동했던 예레미야는 유다 사람들의 죄와 하나님의 벌(8:4-17) 앞에서 자신의 눈이 눈물 근원이 되어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9:1)라며 슬픔에 겨워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비로 다시 한 번 당신 백성들을 회복시켜주실 것을 예언할 때는 자신이 먼저 위로 받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30-31). 하지만 바벨론 포로생활에 지친 유다 백성들에게 그가 전하는 회복과 위로의 예언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예레미야가 예언하던 BC 600년 즈음 고대 근동에서는 인류가 한 번도 본적 없는 문명들이 화려하게 꽃을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세계문명의 고향이라 일컬어지는 고대 근동의 역사는 이미 BC 4,000년경부터 수메르 문명과 더불어 시작이 되었는데, 오늘날의 이라크와 북동부 시리아에 해당하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오늘날의 이란인 고대 페르시아, 오늘날 튀르키예인 고대 아나톨리아와 고대 이집트 등이 당시 고대 근동 문명의 발상지였습니다. 문자가 가장 먼저 발명된 곳도 고대 근동이고, 도자기 만들 때 쓰는 돌림판과 수레의 바퀴와 물레방아 바퀴가 발명된 곳도 고대 근동이고, 중앙집권화 된 정부와 법전이 최초로 형성된 곳, 사회 계층과 노예 제도가 최초로 형성된 곳, 천문학과 수학의 기초가 형성된 곳도 고대 근동입니다. 이것이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BC 600년 즈음 고대 근동을 둘러싼 시대적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예레미야가 오늘 말씀을 선포한 것입니다. 눈부시게 문명을 발전시키고 있는 제국들 틈새에서 망해버린 작은 나라의 늙은 선지자가 전한 메시지에 과연 누가 진지하게 귀 기울였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지금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을 위로하겠다며 그들이 대망하도록 선포하고 있는 "보라 날이 이르리니"(31:31)''이라는 건, 아직 이루어지려면 450년이나 기다려야 하는 멀고 아득한 미래에나 다가올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먼 미래에 그들에게 다가올 희망의 정체는 어떤 실체가 아닌 '새 언약'이라는 '이상(理想)'이었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지금 내 손에 손에 쥐어지지 않는' 약속은 비교적 현실감이 떨어지고 막연한 법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굳이, 그냥 '언약'이라 하지 않고 '새 언약'이라고 표현한 것 안에 이미 옛 언약이 한 번 깨어진 경험이 아프게 녹아 있습니다. 옛 언약은 왜 깨어지고 말았을까요? 애굽에 사는 동안 그들은 이미 '눈에 보이는' 물질과 도구의 세계에 길들여져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그저 '이상(理想)'으로서의 언약이란 것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옛 언약이 깨어져 버렸을 때, 그 때 하나님의 심정을 예레미야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 31:32b

 

하나님의 심정이 느껴지십니까? 그들은 '보이는 세계', '잡히는 세계'에 집착해 하나님과 체결한 사랑의 약속을 깨뜨렸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포기할 수 없어 오늘 다시 예레미야를 불러 '새 언약'을 맺게 하시는 겁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31:33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의 변화를 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라는 중재자를 통해 시내산에서 맺어주신 옛 언약은 돌 판에 기록된 것이었습니다(31:18;4:13). 그러나 새 언약은 그들의 '속에' 두고, 그들 '마음에' 기록하시겠다는 겁니다. 마음은 사람의 가장 내밀한 영역입니다. 성서와 교부들에게 있어서 마음은 지성과 감성, 의지 외에 지각능력에 직간접 영향을 끼치는 기억이 존재하는 곳이고, 하나님의 법과 한 다른 법이 공존하는 곳(7:21-23)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기록해 주신다는 새 언약은 우리의 지성과 감성과 의지 뿐 아니라 기억의 영역에도 하나님의 법이 작동하도록 하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음에 새겨주신 말씀을 '그리스도의 편지'(고후 3:3a)라며,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고후 3:3b)이라고 했습니다. 돌 판은 깨뜨려질 수 있고(32:19;9:17), 두루마리는 분실되거나(왕하 22:8) 소각될 수 있지만(왕하 36:23), 마음에 새긴 새 언약은 절대로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신 30:6-8에서 하나님은 '마음의 할례'를 명하기도 하셨습니다. 실제로 새 언약을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할 때, 일어날 결과를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 31:34

 

훗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 사랑의 확증으로서의 새 언약을 마음에 새길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때부터는 '하나님을 알라'고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하나님을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예레미야를 통한 이 예언은 정확하게 600년 후에 이루어집니다.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 12:20, 21

 

개역개정 성서에는 없지만 헬라어 성서는 '(δέ)' '그러나'라는 접속사로 시작되는데, 그럼으로써 불신에 찬 바리새인들과 경건한 헬라인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생애 마지막 유월절을 지내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셨을 때, 비유대인 출신인 헬라인 몇 사람이 빌립에게 예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방인 가운데서 구원의 첫 열매라 할 수 있는 헬라인들이 주님을 찾아 온 것은 역설적이게도 바리새인들이 방금 전에 한 말과도 연결됩니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12:19). 우리는 이 하나의 장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될 구원의 새 언약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위하여 체결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찾아온 이유는, 조금 전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오신다는 것을 듣고(12:12)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12:13)라던 그 외침이 무슨 뜻인지를 알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에 직접 응답을 주시지 않고 다소 선문답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 12:23-25

 

우리가 이 말씀에서 우선 느끼는 것은 주님께서 헬라 사람들의 전통이 아닌 히브리들의 전통에서 대화의 고리를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는 말씀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새 언약의 때가 마침내 이르렀다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헬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이 아닌 신앙적인 관점에서 말씀하십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서 많은 열매를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대한 밀알의 순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듯, 새 언약의 성취로서의 구원의 열매를 거두는 것 또한 너희가 자랑하는 합리적 이해나 지식이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예수님 자신의 순종과 희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도 그 급박한 순간에먼 미래에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희생에 희망을 두고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31:31)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께서 유월절이 이르렀을 때 제자들과 나누신 마지막 만찬에서, 잔을 드시고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22:20)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마침내 당신의 희생으로 이루어질 새 언약에 대한 선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오늘 복음서에서 이어지는 예수님의 고백들은 한층 더 우리의 마음을 저리게 합니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 12:27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 12:28

 

예수님은 당신 마음의 괴로움을 호소하며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달라고' 애원하시는 중에도 당신이 순종하셔야 할 일과 당신이 순종하셔야 할 때를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결국 이 기도의 결론은 '당신이 희생하심으로' 아버지의 이름이 영광스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죽음이 아버지의 영광이 된다는 고백에는 이중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한 알의 밀처럼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버지의 큰 사랑을 이루는 행위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한 알의 밀처럼 희생당하심으로서 600년 전에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새 언약이 마침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얼굴마다에도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예수님의 이 순종 때문입니다. 오늘 서신서의 말씀을 통해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 5:7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영원한 구원의 근거'에 대한 설명을 자신만의 고유한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근거로 제시하며, 그리스도를 통해 열린 구원의 새 차원에 대해 소개합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 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 5:8-10

 

그리스도를 통해 열린 구원의 새 차원을 히브리서 저자는 "온전하게 되셨은 즉"이라고 설명합니다. 히브리서의 기독론이 담긴 표현인데, 이 말씀에서의 '온전하게'를 희랍어 성경은 '완성하다'라는 의미로 '텔레이오데이스(τελειωθείς)'라고 했고, 영어 성경은 '완전하다'라는 의미로 '퍼펙트(perfect)'라고 번역했습니다. 예수님이 '완전한 자, 완성한 자'가 되었다는 건 그의 죽음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의미이고, 그럼으로써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께만 가능한 생명이 주어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도 육체로 계실 때는 자기를 죽음에서 구하실 분에게 큰 소리로 통곡하며 눈물로 기도하셨지만, 그러나 고난을 통해 순종하는 법을 배우셨습니다(5:8). 당신의 마음을 분열시키는 괴로운 심정을 성부께 완전히 의탁하심으로서 극복하고, 예레미야가 예언한 새 언약을 완성하셨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아버지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하신 것이고, 그로 인해 당신 역시 완전하게 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기도의 첫 머리를 이렇게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6:9).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을 뿐만 아니라 생의 가장 괴로운 순간에 당신도 그 기도를 실천하십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 12:28a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을 대가로 이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가장 불리한 순간에 예수님처럼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도하셨을 때, 하나님의 응답이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 12:28b

 

하나님의 이 응답은 예수님의 전 생애, 이미 지나온 생애와, 아직 죽음을 감수해야 할 생애와, 부활을 통해 영광을 얻을 생애를 통틀어 화답해 주시는 사랑의 응답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진정한 소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새 언약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죽음에 순종하심으로 그 언약을 완성하시고, 하나님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신 예수님, 그리하여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신 예수님처럼, 세속 문명과 문화가 아무리 눈부시게 발전하고, 권력과 자본의 유혹이 우리 마음을 분열시켜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을 따라 걸으며, 주님처럼 기도하고, 주님처럼 순종하고, 주님처럼 죽음으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신앙생활 속에 이러한 소망이 아름다운 열매로 결실하기를 바랍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실천 | Praxio

 

새 언약의 은총을 망각하고 죄로 인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는가?


사순절 제5주-새 언약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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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절 제4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 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성령께서 오시도록 청합니다. 침묵기도는 하나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 의탁하는 ...
    Date2024.03.05 Views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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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사순절 제3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사순절 제3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출 20:1-17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 와니라 3 ○너는 ...
    Date2024.03.02 View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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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사순절 제3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사순절 제3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 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성령께서 오시도록 청합니다. 침묵기도는 하나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 의탁하는 ...
    Date2024.03.01 View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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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사순절 제2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사순절 제2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 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성령께서 오시도록 청합니다. 침묵기도는 하나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 의탁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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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사순절 제1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사순절 제1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 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성령께서 오시도록 청합니다. 침묵기도는 하나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 의탁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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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주현 후 제5주 (나해) |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주현 후 제5주 (나해) |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 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성령께서 오시도록 청합니다. 침묵기도는 하나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 의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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