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회목회자모임 '새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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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제4(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읽기 | Lectio

 

구약 | 21:4-9

 

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 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 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 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 다본즉 모두 살더라

 

응송 | 107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 시는도다

 

서신 | 2:1-10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 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 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 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 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 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 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 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복음 | 3:14-21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 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묵상 | meditatio

 

21:8을 묵상하십시오.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다 불뱀에 물린 사람 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처방은 무엇입니까?

 

3:14-18을 묵상하십시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십 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2:1-10을 묵상하십시오. 그리스도인 됨의 여정 속에서 우리의 과 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습은 어떤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까?

 

기 도 | Oratio | 5-10

묵상 나눔



믿음의 시선, 믿음의 삶

 

이화여대에서 기독교 교육을 가르치시는 양명수교수님이, 몇 해 전 기독교사상에 '우치무라 간조가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치무라 간조, 신 뒤에 숨지 않은 기독교인'이라는 같은 대학 양현혜 교수가 쓴 책에 대한 서평입니다. 함석헌과 김교신의 스승이기도 한 우치무라 간조는 1861년에 태어나 1930년까지 살았습니다. 그가 생존하던 시기는 일본이 서구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추진하고, 조선과 중국을 침략해 제국주의로 발톱을 갈던 시기와 일치합니다. 그러한 시기에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건, 당시 일본의 시대정신에 저항하는 일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본의 전통 안에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서 '두 개의 J' 'Jesus(예수)''Japan(일본)'을 두 축으로 '서양 선교사에게 의존하지 않는 기독교', '서양 교파와 무관한 순수한 일본기독교 신앙'을 추구했습니다. 우치무라 간조가 일본을 사랑한다고 해서 신앙까지 친일본적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자기 조국인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해 군국주의를 실현해갈 때, 그는 제국주의적 침략에 반대하고 전쟁 반대를 외쳤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조국을 사랑했지만, 보편적 진리에 기초를 둔 애국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보편적 진리는 철저하게 성서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철저한 속죄신앙에 서 있는 믿음의 사람이었고, 그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도덕과 종교의 종착점이었습니다. 동지사 대학의 '에비나 단조'를 비롯한 신신학자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정통교리를 비()신화화할 때, 우치무라 간조는 십자가의 대속을 믿었고, 예수님의 부활도 믿고 재림도 믿었습니다. 그는 '자기 의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은 죄와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짐을 믿었고, 하나님께 매임으로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는 믿음으로 그는 자유롭게 세상의 불의에 항거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들 안에 신앙의 결에 있어서 우치무라 간조가 영향을 받았을 법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니고데모와

서신서에 등장하는 사도 바울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신앙의 익숙함 뒤에 숨지 않았다는 것, 복음을 깨달은 후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바라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는 어느 밤중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온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니고데모를 바리새 파() 사람이고, 정치, 종교 사법의 기능을 수행하는 산헤드린의 의원이었다고 소개합니다. 그가 바리새파 사람이라는 건 토라를 믿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고, 산헤드린 의원이라는 건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찾아와, 우리는 선생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알고 있다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고서야 누가 선생님처럼 그런 기적들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3:2) 라고 말합니다. 그는 분명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신앙은 피상적이기 쉽고, 기독교 신앙을 오해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종류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속마음을 다 아셨기에 경계하셨고(2:25), 요한에 따르면 표적을 보고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주님은 당신 몸을 의탁하지 않으셨습니다(2:23, 24). 그래서인지 니고데모의 찬사에 대해 예수님은 그 어떤 화답도 생략한 채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3:3)고 잘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가 신앙을 바르게 가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를 거듭남을 주제로 한 신학논쟁에 끌어들이십니다. 우선 예수님은 유대인이며, 바리새파 사람이고, 산헤드린 의회 의원으로서 그가 가진 정체성에 먼저 문제를 제기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 3:11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느끼는 건, 예수님께서 '우리''너희'를 갈라서 말씀하고 계시다는 겁니다. 다분히 배타적으로 느껴지는 이 표현에서 '우리'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를 의미하고 '너희'는 유대교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왜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온 구도자를 이렇게 배타적으로 대하시는 걸까요? 처음에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와 대화를 시작할 때, '나는'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가'라면서, 유대교인으로서 예수님에 대한 견해를 밝혔던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 느끼신 것은 그가 유대교인이고 바리새인으로서의 자기 세계에 너무 견고하게 갇혀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는데, '너희가' 우리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나무라시며 그가 속한 집단이 얼마나 진리에 대해 배타적인지, 그리고 그의 시선이 얼마나 집단적 사고(思考) 안에 갇혀있는지 스스로 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가 이 '자기세계'를 깨고 나오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진리 안에 있는 자유를 볼 수도 얻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왜 심각한지 주님은 민수기의 한 사건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3:14, 15

 

예수님의 이 말씀의 배경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 여정의 막바지에 겪었던 한 사건입니다. 당시 모세는 트랜스 요르단 북쪽으로부터 에시온게벨까지 이르는 평탄한 '왕의대로'로 가지 못하고 고역스러운 '광야 길'을 따라 백성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 때 백성들의 반응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 21:4

 

마음이 상하자 이내 내면에서 원망이 되어 터져 나왔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 21:5

 

만성적인 그들의 원망은 점점 도를 더해 어느덧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에 대한 불신앙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시지도 않았고, 광야를 걷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도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만나를 향해 '우리 마음이 싫어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자기들 생각과 달랐을 때, 그들은 광야도 만나도 다 싫기만 했습니다. 결국 도를 넘은 그들의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불뱀들을 보내 백성을 물게 하셨고, 많은 사람이 뱀에 물려 죽었습니다(21:6). 다행인 것은 늦게나마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이 무얼 잘못했는지를 알았다는 겁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에게 자신들의 죄를 정확하게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게 하십니다(21:7-9).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마다 치유를 경험하도록 해 주십니다. 어쩌면 그것이 너무 쉽고 유치한 방법이어서 오히려 더 받아들이기에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내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방법을 믿고 받아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내 보고 싶은 곳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라 하신 곳을 바라보는 것, 믿음의 시선이란 그런 것입니다. 장대 끝에 달린 뱀을 보느냐 보지 않느냐, 그 작은 시선의 차이로 삶과 죽음이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듯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한 믿음의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3:16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우리의 멸망을 막아 영생으로 이끌어줍니다. 문제는 사람의 시선이 땅에 붙박여버리면 좀처럼 믿음 갖기가 어려운 것에 있습니다. 앞에서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3:12) 라시며, 인간의 시선에 대해 굉장히 답답해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니고데모가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3:9)라며 당혹해 했던 것도, 그가 비록 산헤드린 공의회의 의원이었고,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살아왔음에도 그러나 그의 시선이 땅에 붙박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왜 심각한지 계속 이어지는 예수님 말씀을 보십시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 3:18

 

이 말씀 안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안타까움이 애타게 배여 있습니다. 우리는 심판을 생각할 때, 단순히 내게 어떤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지 않는 자가 받은 심판'은 그보다 훨씬 본질적인 구원의 여부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그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으로 이미 구원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런 불행한 사태가 바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예수님은 빛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예()로 다시 심판에 대해 설명해 주십니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받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 3:19 공동번역

 

어쩌면 예수님의 이 말씀이 니고데모로서는 받아들이기 곤혹스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특별히 다른 사람보다 인격적인 결함이 있다거나, 혹은 종교성이 부족하거나,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시원치 않아서 거듭남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직 자기의 작은 세계에 갇혀있는 것, 그것이 그가 거듭남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였습니다. 그런 니고데모를 예수님은 한 층 더 몰아붙이십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 3:20

 

앞 절에서 "행실이 악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이번에는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않았다"고 몰아세우십니다. 이건 정말 니고데모로서는 수치스럽고 받아들이기 억울한 진단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하여 그 어떤 핑계도 항변도 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훗날 요한은 이 니고데모와 관련해서 매우 주목할 만한 이야기 하나를 들려줍니다.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19:39, 40). 요한이 전해주는 이 기사에 따르면, 이때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를 맞이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그가 예수님 말씀을 받아들여 자기 세계에서 벗어났으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빛을 향해 선 존재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가 이렇게 자신의 익숙함 뒤에 숨지 않고, 자기 의를 포기하고 하나님 사랑을 의지하는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었을 때, 그는 마침내 진리를 따라 빛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그는 '하나님 안에' 있으며, '하나님 안에서' 행하는 존재가 됩니다. 그가 거듭나 하나님 안에서 행하는 존재가 되리라고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 주님은 오늘 말씀을 이렇게 마치십니다.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 3:21

 

니고데모는 분명히 과거에 어둠에 속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그를 진리를 좇아 빛으로 나아오게 했습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빛보다 어둠을 사랑했던 존재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변화되어 빛을 향해 서는 것이고, 진리를 따르는 성도로서 빛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여러분도 전에는 죄와 잘못을 저질러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죄에 얽매여 있던 때에는 이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았고 허공을 다스리는 세력의 두목이 지시하는 대로 살았으며 오늘날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을 조종하는 악령의 지시대로 살았습니다. | 2:1, 2 공동번역

 

이 말씀을 포함해 에베소서 2장은 에베소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복음을 영접하기 전과 후로 보여줍니다. 먼저 1절과 2절은 과거에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과거에 그들은 죄 가운데서 이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았고, 허공을 다스리는 세력의 두목이 지시하는 대로 살았으며, 불순종하는 자들을 조종하는 악령의 지시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들의 과거에 대해 설명합니다.

 

실상 우리도 다 그들과 같아서 전에는 본능적인 욕망을 따라서 육정에 끌려 살았던 사람들로서 본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 2:3 공동번역

 

만약 우리 존재가 이런 상태로 끝나고 만다면, 이후에 다가오는 심판과 멸망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다행히도 바울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우리의 현재를 긍정적으로 진단해줍니다.

 

그러나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잘못을 저지르고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렇듯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셔서 하늘에서도 한자리에 앉게 하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세대에 보여주시려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이렇게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그리스도를 믿어서 된 것이지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이 구원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이렇게 구원은 사람의 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 2:4-9 공동번역

 

우리의 과거는 어두웠으며 악했습니다. 우리는 땅의 것들에 시선을 두고 탐했습니다. 그 결과로 육은 살았으나 실상은 죽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비로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려주셨는데, 그것은 철저하게 믿음으로 인해 주어진 것이며(2:8), 우리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이 상태가 바로 우리의 현재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도 바울은 우리의 미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줍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 2:10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재창조된 미래의 우리입니다. 즉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의 정체는 '선한 일을 위하여 거듭난 자'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4세기 중엽 안디옥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당시 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를 지낸 '() 요한 크리소스톰'은 사치가 극에 달한 도시에서 살면서도 그의 삶은 오히려 금욕적이었습니다. 그는 좋은 음식을 찾지 않았고, 화려한 옷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자주 기도하고 명상에 잠기고 성경을 읽었으며, 자기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의 것은 맨몸에 걸친 간단한 옷 한 벌뿐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몸은 야위어서 뼈만 남았지만 온 도시는 그의 말에 떨었고 황제도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존경을 받았지만 그런 것들을 오히려 초개처럼 여겼습니다. 그는 물질의 추구로 인하여 영혼의 눈이 진리를 떠날까 두려워했습니다. 그의 시선이 본 것은 영혼의 부요함이었습니다. 참 믿음은 우리를 그렇게 이끌어 갑니다. 믿음이란 '신 뒤에 숨는' 나약함도 혹은 비겁한 것도 결코 아닙니다. 믿음은 '자기 의'가 아닌 '하나님 사랑으로' 죄와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라하시는 곳을 바라보는 성도는 그만큼 영혼의 부요함 속에서 살 것입니다. 사순절은 그런 믿음의 시선, 믿음의 삶을 훈련하는 기간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주님을 향하여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드높이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우러러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실천 | Praxio

 

시선을 땅에 두고 불평과 원망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 시선을 맞추고 살아가는가?


사순절 제4주-믿음의 시선, 믿음의 삶.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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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절 제4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 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성령께서 오시도록 청합니다. 침묵기도는 하나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 의탁하는 ...
    Date2024.03.05 Views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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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사순절 제3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사순절 제3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출 20:1-17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 와니라 3 ○너는 ...
    Date2024.03.02 View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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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사순절 제3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사순절 제3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 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성령께서 오시도록 청합니다. 침묵기도는 하나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 의탁하는 ...
    Date2024.03.01 View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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