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11/1에 발행되는 <농촌과선교> 에 실을 글이었어요.  혼탁한 감리교회를 보고 총회전에 판결을 내려주겠다더 약속을 지켜 엊그제 판결을 내려졌어요. 감리교는 일단 정상화의 모습을 갖게 되었지요. 다만 똑 같은 사안을 가지고 1심판결이 너무나 다르게 판결이 나온 점이 인간이 하는 판결일 뿐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읍니다. 상황이 바뀌어 원래대로 회지엔 실을 수 없어 여기에 올립니다.

 

“감리교회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이글이 나갈 때면 감리교 총회가 어떤 식으로든지 정리 되었을 것이다.

1년에 한번 있는 총회가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

재판의 결과에 따라 감리교 총회의 운명이 달려 있다.

젊은 판사의 판단에, 신앙이 있는 지 없는 지도 모르는, 법을 전공한 어느 젊은 판사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감리교회가 이리 가고 저리 가고 있다.

 

서로가 자신들만이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둘다 옳고, 둘다 틀렸다.

그렇다고 해서 양비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하는 일엔 완전한 일이란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일들은 불완전한 일임을 모르고 행하고들 있다.

그래서 자기의 생각만이 옳다고 해서는 안 된다.

상대를 틀렸다고 지적하는 순간 우리는 독선에 빠질 우려가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된다.

 

그래도 잘못된 것은 잘못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엔 전제가 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 고백하는 존재들이다.

게다가 우리의 삶의 현장인 감리교회는 연결주의라는 좋은 제도와 정책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잘못되었다고 할 때엔 이런 고백과 정책을 기저에 깔고 이야기해야 한다.

즉 상대를 나와 분리된 존재로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상대가 한몸이고 연결되어 있음을 전제로 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상대의 잘못은 나의 잘못이 되므로,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행위는 우리를 온전케 하려는 그분의 뜻을 따르고 우리 자신을 치유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가급적이면 숨기고 싶다.

너무 부끄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행위엔 용기가 필요하며, 믿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 자신의 치부가 무엇인지 아는 한 우리 스스로는 불편하다.

이것을 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속이 상하시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치부가 감춰지길 원하지 않으신다.

대신 치부를 드러내는 행위가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거나, 도덕적 우위를 확인하는 행위여서는 곤란하다.

상대는 나와 연결된, 나와 한 몸이기 때문이다.

 

치부가 드러나면 그것을 치유하고 온전케 하시고자 하는 그분의 뜻을 따라서 우리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치부를 드러내게 하신 그분의 뜻을 분별해야 하며, 그뜻이 분별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지위를 포함한 그 어떤 것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감리교의 지도력들과 정치세력들에게 부탁을 하고 싶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이를 위해 기도하면서 자신의 것을 내려놓을 수 없다면, 말 그대로 정치라도 제대로 하길 바란다.

싸움만 하고, 서로를 죽이려 하지 말고, 정치를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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